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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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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31 조회6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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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보스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 측면을 염두에 둔 개혁파의 언약 교리는 계시사를 구성하려는 첫 시도였고, 오늘날 성경신학이라고 불리는 것의 선구로 옳게 간주될 수 있다."81

이런 의미에서 개핀은 보스적인 성경신학은 개혁주의의 원리인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가장 열매 있고 철저하게 실현한 것이라고 한다.82

 

(3) 종말신학의 구성

 

이렇게 구속사에 유의하면 이제 신학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활동이 신약 성경이 종말이라고 부르는 시대 안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신학 활동도 종말론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83

보스는 그의 성경신학 마지막 문장에서 "교회가 종말론적 세계에 포함된다"고 하면서, "그 종말론적 세계는 향하여 가는 사물의 질서일 뿐이 아니라, 이미 획득된 사물의 질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아주 명백한 진술을 한다.84

, 종말이 이미 실현된 측면이 있으며, 극치에 이를 측면이 있음을 언명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말"이라는 말은 "신약 시대"라는 의미의 종말이고,85 보스가 "()종말론적"(semi-eschatological)이란 용어를 쓰고 적용할 때의 종말이다.86

,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모든 활동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특히 그의 부활과 그의 재림 사이라는 구속사적 맥락87 안에 있음을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종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 사용에서나, 우리의 신학 구조에서나, 우리의 개인적 교회적 활동에서 이런 신약 적 종말론의 진정한 의미가 잘 드러나야 할 것이다.

 

12. 나가는 말

 

이제까지 우리는 개혁주의 성경 신학의 의미를 분명히 생각해 보고, 이런 논의의 터에서 조직신학이 개혁주의 성경 신학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신학은 다른 모든 신학 분과와 함께 성경신학도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성경 주해에 근거해야 한다. 또한

(1) 성경 신학이 밝혀 보여 주려고 하는 특별 계시의 역사에 유의하면서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하고,

(2) 성경 계시가 밝혀 주는 구속사에 유의해서 그 신학의 틀을 구속사를 중심으로 새로 구성하거나, 종합적 방식을 유지해도 구속사적 진전에 유의하여 언약의 역사적 발전을 주의 깊게 추적해 나가며,

(3) 우리가 속한 구속사의 시기인 "종말"의 의미에 충실한 작업을 해야만 한다. 부디 우리의 조직신학이 이런 성경 신학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역시 주해에 근거해서 성경으로부터 계시의 선, 즉 계시의 역사를 이끌어 내는 성경신학도 조직신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또 얻어야 한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개혁주의 성경 신학을 제시한 보스가 조직신학을 가르쳤었고, 조직신학 책을 쓰기도 했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성경 신학이 조직신학적 가르침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성경신학을 읽는 이들은 누구나 잘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보스는 너무 교의적이었다고 하면서, 이를 개혁주의 성경 신학이 극복해야 할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것이 우리가 개혁주의 성경 신학을 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성경 신학이 조직신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움도 상당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신학적 작업과 조직신학적 작업의 관계는 마치 하나의 해석학적인 순환을 해 나가는 것과 같다. 일단은 주어진 이해[전제, 암묵리의 조직신학]를 가지고 성경에로 나아가서 그 계시의 흐름을 통해 가르침을 받으면(성경신학적 작업), 그 후에 그 가르침 받은 것에 더해서 더 풍성해진 이해를 정리하게 되고(조직신학적인 작업), 이제 이렇게 더 풍성해진 이해를 가지고 또 성경 본문과 씨름하되 그 본문의 계시성에 유의하므로 성경신학적인 작업을 하면서 다시 또 그 결과를 조직화하는 끊임없는 나선형적인 순환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보다 풍성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리의 점진적 발전이 그 언제 그쳐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따라서 "조직신학은 결코 완결된 학문(a finished science)이 아니며, 그 과업이 완성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머레이의 말은 아주 정확한 것이다.88

그러므로 좋은 조직신학과 좋은 성경 신학은 상호 의존적인 것이지, 상호 배타적이거나 경쟁적인 것일 수 없는 것이다.89 만일 그런 관계에 있는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성경신학도, 바른 조직신학도 아닐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잘 조화되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정상에 이른 조직신학과 정상에 이른 성경신학은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합하여 우리의 신학 전체와 교회를 살찌울 수 있을 것이다.

 

 

 

12) Vos, Biblical Theology, p. 6=p. 22; Gaffin, "Introduction," p. xvi.

13) Richard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A Prolegomena to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3).

. 개역 성경의 오역

 

1. 성경은 일점일회도 틀림없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옳은 말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겠다. 그런데 성경의 번역이나 인쇄과정에서 오류가 쏟아져 나왔다면 하루 속히 정정하고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역 성경을 살펴보자. 1900년에 신약이 완역되고 1937년에 개역을 거쳐 구약의 완역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에 [성경전서]라는 구신 약 합본이 빛을 보았고 1937년에 또 한 차례 개역을 거쳐 1952년 에 비로소 한글 맡춤 법에 의해 수정되어 나온 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인 것이다.

(1971년에 [신구교 공동번역]판이 나왔고 또한 [현대인의 성경]1977년에 출판되었으나 표준 성경으로서 통용되고 있지는 못하다.)

우선 우리의 성경의 원천이 중국어 성경에 있고 또한 영어 성경 [King James Ver- sion](고전어체)의 내용을 주축으로 한 번역으로 이루어졌기에 대학졸업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되어있다.

사용되고 있는 한문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어려운 것들이어서 한절, 한절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더욱이 놀랄 일은 원문과는 정반대되는 표현이 한 두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가 되고 ''''이 되고 '하지 아니 하는 자''하는 자'로 되는 등 인쇄과정에서 빠뜨렸거나 교정과정에서 실수(?)한 점이 우리 성경에는 무수하니 어찌된 셈인가.

구약에서 나타난 수많은 오류 중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모세의 장인 호밥'(4:11)'...모세의 처남 호밥'이라야 하며(사실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3:1) 이다) '각각 금 한조각과...'(42:11)'각각 은 한조각과...', '거류하는 자같이'(14:8)'거류하지 아니 하는 자같이'라야 하고,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50:5)'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라야 한다.

또한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진멸하니라'(20:42)가 아니라 '각 성읍에서 나온 자들이 그들을 진멸하니라', '내가 장수함으로'(91:16)'내가 그들을 장수케 함으로'이어야 한다.

또 번역과정에서 잘못된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박사가 네 선장이 되었도다...노인과 박사들이..."(27:8,9). 이 구절은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본뜻은 "항해에 익숙한 자들이 네 선원이 되었도다...노련한 숙련공들이..."인 것이다.

또한 "비느하스가 너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되었도다.

"(25:11)라고 한 표현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번역인데 구약이 어렵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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