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8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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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46 조회6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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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신자는 자기의 죄가 용서되기를 구해야 한다.
성경은 성도들이 매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라고 반복해서 기도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의심 없이 고백하고, 또한 주께서는 용서하시겠다고 말한다.
또한 주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신다. 따라서 주께서는 한두 번만 용서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놀라 주를 부를 때마다 용서하신다.
2) 옛 언약 하에서 죄 많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율법
~율법아래 있는 요셉의 형들은 할례를 받은 자요, 언약에 참여한 자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을 팔려고 했던 형제들의 죄는 잔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된 백성 사이에서 추방되기는커녕 족장으로 세움을 받았다. 율법과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약속될 때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의 죄를 용서하실 용의가 있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3) 옛 언약 하에서 죄 많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예언서 - 무수한 죄로 뒤덮인 백성에 댛나 이런 자비의 약속은 예언서에도 가득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반역보다 더 중한 죄라고 칭하는 하나님과 교회와의 분열의 조도 용서하시고 이기신다.
예레미야는 “반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렘3:12)이라고 기록한다.
4) 새 언약 하에서 죄 많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그 은혜와 자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나타났으며 주께서 풍부한 자비를 베푸셨고(딤1:9, 3:4, 딤후1:9)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해가 실현 되었다고(고후5:1
5) 성경은 명백하게 선언한다.
우리가 이 성경을 믿는다면 하늘 아버지의 자비가 끊이거나 줄지 아니하고 풍성하게 흘러내리심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의 용서 참조)
6) 타락한 교회들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온 교회가 가장 가증스런 죄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을 때 바울이 그 지도자들을 저주하지 않고, 온유하게 그들을 죄에서 풀어 주었다.
갈라디아 교회의 신자들의 이탈(갈1:6, 3:1, 4:9)과 고린도 교회의 더 시한 가증스러운 죄에도 불구하고 주의 자비는 두 교회를 제외하지 않았다.
7) 무의식적인 죄만 용서를 받는가?
어떤 이들은 고의적인 허물 즉 알면서도 기꺼이 빠진 죄만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신자들의 고의적인 죄를 대속할 제물과(레6:1이하) 모르고 한 행위를 대속할 제물을(레4) 각각 따로 드리라고 주께서는 율법에서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고의적인 죄에 대한 대속을 거부한다는 것은 심히 악한 생각이다.
주께서는 육적인 제물을 인(印)으로 삼아 성도들의 고의적인 죄에 대한 용서를 확인하셨으므로, 이 용서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희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명백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가 그렇게 관대하게 나타났는데에도, 박정한 우리가 그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8) 고대 교회에 있었던 “두 번째 회개”의 문제
고대 저술가들은 신자들이 매일 받는 용서는 가벼운 과실, 즉 육이 약하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가벼운 과실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교부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믿음을 잃고 비틀거리는 일이 많으며 때로는 공연한 맹세를 하고 가끔 화를 내며 심지어는 욕설을 터뜨리고 이 밖에도 주께서 힘이 싫어하시는 악습이 있다는 것을 알므로, 이런 ‘경미한 과실’을 큰 추태와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지 용서 받지 못하는 죄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유일한 지도 법칙인 주의 말씀은 이들 보다 더욱 온화하여 권징 시행이 지나치게 엄격해서 권징의 중심 대상인 사람이 슬픔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고후2:7).
*기독교강요
1. 개요 : ‘강요’란 ‘원리들’ 혹은 ‘주된 교의적 주제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강요>는 신학의 모든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목회 경험과 거듭된 신학 논쟁에 따라 칼빈의 신학 사상은 계속 발전하였고 <기독교강요> 역시 재편집과 증보에 의해서 그 양이 늘게 되었다. 그래서 초판은 300여 페이지인데 반해 최종판은 1,500여 페이지에 달한다. 본 책은 최종판을 번역, 요약한 것이다. 칼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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