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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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2 조회4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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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음의 확실성을 갖고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그가 멀리 나타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의 몸에 접붙이셔서 그의 모든 은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받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서 분리하거나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우리를 하나로 묶으신 그 친교의 유대를 우리는 용감하게 두 손으로 굳게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10)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우리가 이것을 확신하려면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밖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끊을 수 없는 교제의 유대로 우리와 꼭 붙어 계실 뿐 아니라 놀라운 영적 교통에 의해서 날아 갈수록 더욱더 우리와 한 몸이 되시며, 드디어 완전한 일체(一體)가 되신다. 그래서 칼빈은 “참으로 그와 하나가 되며, 그의 의는 그대들의 죄를 극복하시며 그의 구원은 그대들이 받을 정죄를 말소하시며, 그의 높은 가치로 인해서 그대들의 무가치함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중재하신다.”라고 적고 있다.
10) 믿음의 두 면에 대하여 Bernard가 한 말
베르나르드는 교회 봉헌에 관한 한 설교에서, “나의 영혼을 그대로 보면 그것은 무(無)로 돌아간다(시 72:22)고 하는 것이 가장 진실한 말입니다.” “우리의 불의한 행실들은 무엇에 비교할 것입니까?”
“틀림없이 사람은 헛것 같을 뿐입니다(시 144:4).” “사람은 무로 돌아갑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한 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사람이 어떻게 전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어떻게 무(無)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난 후 그는 “교우 여러분, 용기를 냅시다. 우리 자신의 마음속을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필경 우리의 무엇인가가 하나님의 마음속에 숨어있을 것입니다.
오, 자비의 아버지!(고후 1:3). …당신께서는 없는 것을 부르심으로 그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그들을 부르셨으므로 그들은 있습니다. 그들 자신만으로는 없으나 당신이 함께 계셔주시므로 그들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으로 “이제 우리가 무엇인지를 이 두 가지 점에서 자세히 검토한다면, 즉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크게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의 자랑은 적어보이겠지만 이전에 비해서 아마 더 크고 근거도 더 훌륭한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자랑하리라고 믿습니다.”(고후 10:17).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는 곧 자유를 얻으리라(렘 17:14)고 우리는 생각한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도 무방합니다.” “…두려움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는 말합니다. 우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존귀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11) 하나님의 경외함과 공경함
“여호와를 경외함”은 하나이지만 그 근본 의미는 이중적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주인으로서의 경외를 받으실 고유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하는 아들로서 그리고 충성된 종으로서 처신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주를 아버지로서 순종하는 것은 주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공경”이라고 부르시고 주인으로서 섬기는 것을 “경외” 또는 “두려움”이라고 부르신다.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 1:6). 따라서 주께 대한 우리의 경외는 공경과 두려움이 섞인 것이 되어야 한다.
12) 자녀의 두려움과 종의 두려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 두려움은 불신앙에서 생기는 공포이다. 따라서 불신자들의 두려움은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과는 그 질이 다르다.
즉,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심판의 벌을 무서워하는 것이지만, 신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자녀로서의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또한 그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함에 대한 자발적인 두려움이다.
따라서 불신자들의 두려움은 “종의” 또는 “비굴한”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녀에게 합당한 자유롭고 자발적인 두려움인 것이다.
13) 믿음이 확약하는 것은 지상의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써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시는 한 아무 선도 부족할 수 없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약하실 때 우리는 구원을 충분히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 되는 것을 해소시키고 은혜로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것이며(엡 2:14), 하나님의 사랑은 금세와 내세에 대한 약속을 얻고(딤전 4:8) 모든 좋은 일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얻는 것이다.
믿음은 한 가지 확신만 있으면 만족한다. 곧 현세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이 우리에게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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