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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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40 조회5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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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개혁주의 신앙고백에서의 성경관
1. 성경을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으로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신약에서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2. 신약의 교훈
신약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인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다.
물론 이 말씀에 대한 학자들의 주관과 주석의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한 가지 변함없고 절대적인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함"과 "선한 일을 하게 함"이다.
그러면 성경이 무엇이기에 온전케 하며 선한 일을 하게 하는가? 베드로후서 1장 20절에 의하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아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3. 구약의 교훈
구약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법"(The Law of God)이라고 했고(느 10: 28),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의 율법 책"(The Book of the Law of God)이라고 했다.
그 율법 책은 사람에게 복과 저주의 길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율법, 이 진리에 따라 축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하여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사화복의 길이요 척도이다.(신 11: 26-28, 28: 1-68). 이것은 자기 자신만 아니라 자기의 후손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성경은 첫째 구속의 법이며, 둘째는 신앙의 법이다. 셋째는 생활의 법이 되며, 넷째 생사화복의 법도 된다.
4. 벨기에 신앙 고백(1561년)
1) 제 3조 성서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하나님은 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히 배려 하셔서 자기의 종들, 즉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자기의 계시된 말씀을 글로 쓰도록 맡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글을 성서라고 부른다.
2) 제 4조 성서의 정경들에 관하여
우리는 성서가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있고 이 책들은 정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구약 성서의 책들: 모세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 명 기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의 두 책들, 파라리포메논이라는 열왕기의 두 책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세책들, 즉 잠언, 전도서, 아가서 : 네 대 예언자들, 즉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및 다니엘: 그리고 12 소 예언서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나,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 성서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의 14편지들, 즉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갈라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디도에게 보낸편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베드로의 두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유다의 편지: 사도 요한의 계시록 등이다.
3) 제 7조 성서의 완전성에 관하여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것은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서 안에 대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부탁하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아니,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어떤 것을 보태든지 혹은 거기서 어떤 것을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성서에 있는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사람이 쓴 어떤 신성한 책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성서와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고하기 때문에 관례, 대중, 고전, 연륜, 전승, 회의들, 법령들, 혹은 제도 등등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이 절대 무오한 규칙과 조화되지 않은 것을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배격하는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 대로 이다. "영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지 시험해 보라", 또한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와서 이 교리를 전하지 않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
4) 제 8조 동일 신성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데, 그는 하나의 단일 신성을 가지신 삼위이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 곧 성부, 성자 및 성령은 실질적으로, 참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별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기원이시다. 성자는 말씀이니, 성부의 지혜이며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영원한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별에 의하여 하나님이 셋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부, 성자, 및 성령은 각각 자기 품격을 가지시며 그들의 특질에 의하여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으로 삼위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또한 성령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삼위는 나눠지거나 서로 혼돈되지 않는다.
성부는 육신을 입지 않으셨고 성령도 또한 그러하고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 또한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삼위는 다같이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째 되는 분도, 또 나중 되는 분도 없다.
5) 제 9조 성서가 증거 하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모든 진리는 성서의 증거들은 물론 삼위의 역사, 특별히 으리 자신들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에 의하여 우리가 안다.
이 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성서의 증거들은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을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26, 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 또 창세기 3장 22절에서 말하기를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형성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안에는 한 품격 이상의 품격들이 있는 듯하다.
또 그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때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몇 품격이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성서에서는 우리에게 애매했던 것이 신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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