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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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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55 조회6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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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칼빈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단사건과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하도록 이끈 사건을 통하여 위의 원리를 더욱 분명히 하였다. ,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반대되는 것이지만, 솔로몬의 망은은 결국 분열케 하였으며 이는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나온 것이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통일이스라엘의 분열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지만 백성의 반역은 정당하게 정죄되는 것이다.

성부는 성자를 내어 주셨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육체를 주셨으며 유다는 주님을 관헌들에게 내어 주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의로우시며 인간은 죄의 책임이 있는가? 저들은 동일한 행동을 하지만 동일한 근거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은 사악한 자의 마음속에서도 자신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시되 그들의 공적을 따라 보응하시니, 어느 누가 이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라는 어거스틴의 말에 동의한다.

하나님께서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순서를 숙고해보면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사와 사탄마귀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천사들에 의한 성도들의 보호하심을(, 수호천사는 인정하지 않음), 그리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사탄마귀는 욥의 고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한 우리 성도들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창조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그의 권능으로 성도들을 양육하시고 유지하시며 섭리하신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창조와 섭리는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영역은 모든 부분이시기 때문에 스콜라학파의 숙명론 또는 운명이나 우연은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섭리는 일반적인 부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개개인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당연히 특별섭리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제16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섭리교리는 과거는 물론 미래도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교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는 분명히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한한 겸손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할 때 번영할 때는 감사로, 역경 속에서는 인내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놀라운 자유를 얻게 되는 유용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무리들은 항상 자신이 비참한 존재로 인식하겠지만, 그 반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 제17장에서 확인한 내용이었습니다.

칼빈은 마지막 제18장에서 다소 난해한 문제를 다룹니다.

, 하나님의 은밀한 명령 없이는 인간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보았는데, 불신의 왕 아합 속였던 사건이나 압살롬의 근친상간 등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칼빈은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여기까지도 분명 하나님의 의지적인 작용인 하나님의 행위가 개입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시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 자들은 죄책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에 대하여 이들은 타락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교훈(계율)을 범하면서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책임을 그들에게 돌아간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지는 이중적인 것 아닌가? ‘하지마라’(금지)는 율법을 두었음에도 또한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는 이중적이라는 비판에, 하나님의 의지는 단일하다면서, 우리의 정신적 무능력으로 인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깨닫지 못한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감추었던 비밀내지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완전히 알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불경자의 행위를 사용하신다고 하더라도 이것 역시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며 이 점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의지교훈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즉 하나님의 의지는 단일하신데 인간이 하나님의 교훈(계율)을 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한 것이 되지만, 이 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를 칭찬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누가 반문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18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청조와 섭리를 배우면서, 우리의 모든 삶의 속속들이 하나님의 간섭과 지도하심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우리 스스로 겸손히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의 현실의 형편을 볼 때 그 삶은 결코 녹록하지 못한 삶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즐거움과 기쁨의 삶을 풍족히 누릴 것입니다.

 

칼빈의 선택과 예정의 대하여

 

칼빈의 창조와 섭리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창조는 섭리로 이어짐을 확인하였으며, 특히 이러한 섭리교리는 성도를 번영 시에는 감사를, 고난 시에는 위로를, 그리고 미래의 불안에 대해서는 자유 함을 얻게 하는 유익이 있다고 칼빈이 말하였던 부분을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는 한 부분에 대하여 또 다른 한 부분, 즉 선택과 예정에 대하여 칼빈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칼빈의 선택과 예정론에 대해서는 칼빈 당시에도 많은 비판자들이 있었으며, 지금도 알미니안 계통을 중심으로 그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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