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5대교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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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2:01 조회6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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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알미니안 신학의 도전에 대한 칼빈주의의 신학적 대응으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불가피하게 만들어 진 개혁주의 신학의 요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5대 강령은 Heidelberg Catechism과 Belgic Confession과 더불어 화란교회 뿐 아니라 세계 개혁주의 교회들에게 중요한 교리적 근거가 되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5.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에 논쟁이 되는 성경 구절
1)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쫒지 아니하리라”.
칼빈 주의자들은 요6:37절이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을 거부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자는 모두가 거기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들은 37절에 나타난 “내게 주시는 자”는 40절에 나오는 “아들을 보고 믿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보내신다는 것이다. 45절에도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께로 오는”자들이라는 것이다.
2) 요한복음 6:44, 65-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에 다시 살리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칼빈주의 자들은 이 두 구절 속에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속죄” 그리고 “이중 예정론”의 교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는 곧 인간의 전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택의 원인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한된 속죄와 이중 예정론은 인간이 하나님의 선택이 없이는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없다는 말씀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끌지 아니한 자들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들을 위한 죽음이 되지 못하며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알미니안들도 위의 성구들이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가르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한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인간”(all men)을 그리스도께로 보낸다고 주장한다,
(요 12:32; 16:8). 더 나아가 그들은 선택의 원인을 아버지로 부터만 찾는 것은 요6:29, 35, 40, 47절 등에 나오는 아들을 전혀 무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구원의 책임과 원인을 찾는데 있어서 부름에 응답하는 인간을 무시한 채 아버지에게서만 찾는다는 것은 40절에 나오는 아버지의 뜻(“아들을 보고 믿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제한된 속죄나 이중 예정론의 교리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라”.
칼빈주의들은 이 구절이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효케 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알미니안들은 문맥상 이 구절이 가리키는 것이 12제자들의 사도성이지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말이 바로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라는 것이다. 이것은 요6:70-71절에 나타난 제자들의 선택하심과도 같은 예라는 것이다. 왜냐면 가룟 유다의 경우는 제자로서의 선택이지 구원에 관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사도행전 13:49-“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칼빈주의자들은 이 구절 역시도 무조건적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꾸로 “믿는 사람들마다 다 영생을 얻으니라”고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미니안들은 “작정된 자”(tetagmenoi)로 번역된 분사가 중간-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같은 형태의 분사가 헬라어로는 중간태와 수동태 두 가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NASB번역과 한국어 번역은 수동태로 번역 되어 있지만 이 문장을 중간태로 읽는다면 “영생을 얻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 믿더라”가 된다는 것이다.
5) 로마서 9:16, 22, 23-“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칼빈주의자들이 롬9장을 무조건적 선택과 이중 예정론의 근거로 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16절의 내용대로 하나님의 선택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이 아니고 하나님편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며, 둘째로, 18절(“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의 내용이 이중 예정론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로, 22, 23절에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과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택을 말하는 것이고, 넷째로, 이러한 선택은 민족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24절에 긍휼의 그릇이 이스라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 즉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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