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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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9:42 조회4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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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비둘기의 눈은 한 번에 한가지의 사물 외에는 볼 수 없다.
이는 목적을 한가지로 갖는 것이요 오직 주님만 본다는 것이요. 외길만 보며 간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아름다운 눈과 같은 영을 가진 자를 사랑하시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신다.
16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이 내용은 여인이 왕에게 대답하는 내용이다.
왕을 사랑하는 여인의 눈에 왕의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 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더욱 기뻐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이런 아름다운 느낌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 속사람은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이 아름답게 보일 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나약한 성도라도 아름다운 점만을 보면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속사람을 가질 때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도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요소가 있어야 주님을 바르게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신령한 요소는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신령한 영의 작용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이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여인이 그토록 갈망하고 바라던 영적 휴식과 쉴 수 있는 안식 수준에 왔음을 기뻐하고 있음을 본다.
푸른 목장의 비유는 푸른 초장에 양들이 도착하면 그들은 휴식을 얻게 된다.
왜일까? 목자가 양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푸른 목장 안에 있는 양떼들은 눕는다.
눕는 것은 달콤하고 만족스럽고 평안하다는 것이다.
(시편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실로 목자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양떼가 먹고 휴식도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상의 푸르고”
이는 양들이 푸른 초장에 도달하여 목자가 지켜주므로 평안과 안식과 평화로움이 있음을 비유하며 우리의 영적 상태의 실상을 보여준다.
실제로 주님이 사랑하는 영혼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영혼 깊은 곳에서는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요. 성령에 의해서 얻은 기쁨이요 축복인 것이다.
반드시 성령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안식을 주신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환경이 진퇴양난일지라도 속에는 위로와 기쁨이 있는 신앙이 깊은 신앙이요.
“침상은 푸르고” 의 수준에 이른 성도들인 것이다.
17절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
이 내용의 백향목은 키가 크고 강한 나무이다.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로 뿌리가 지하로 2~3km를 뻗어 내려간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을 입은 새로운 인간성을 말한다. 우리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어야 한다.
특히 솔로몬이 지은 성전 건축 목재의 대부분이 백향목과 잣나무로 되어있다.
이중에 잣나무는 죽음의 땅이라 일컫는 곳에서 생산되고 자라고 유대 땅 포도원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결국 백향목은 주님의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의미하고 잣나무는 주님의 죽으심을 의미한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여인이 휴식을 얻게 된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게 될 때부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친히 체험할 때 우린 구원의 기쁨과 영원한 삶이 보장되니 휴식하고 안식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린 이제 안다.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심을 얻는 것이 주님의 안전한 인격과 희생적 죽음에 의해서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솔로몬 성전에 제일 중요한 나무는 백향목과 잣나무이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짓는 데에 가장 가치 있는 재목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백향목으로 성전 벽을 삼으시고 잣나무로 마루를 삼으신 성전에 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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