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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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40 조회5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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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된다.
우리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의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성자가 물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 형식은 또한 모든 신자의 세례의식에 쓰이도록 그리스도가 제정하셨다."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라."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성령이 아가씨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또 같은 모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노희와 함께 하시리라."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자,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세 분이 계시며 이 세분은 곧 한 분이시라." 위의 모든 곳에서 보면, 세 품격이 계시되 한 거룩한 본질을 가지신 것을 충분히 가르친다.
그리고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되 내세에 하늘에서는 완전한 지식과 은총을 향유할 것을 기대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삼위의 우리를 위한 특수한 직책과 역사를 살펴야 한다.
성부는 그의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아들은 그의 피에 따라 우리의 구주이며 구원자로,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심에 따라 성화자라고 불리운다. 사도시대 이후로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는 유대교인, 마니교인, 어떤 거짓 크리스찬들과 이단들, 즉 마르키온, 프라키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태누스, 아리우스와 그리고 정통교부들로부터 정식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항하여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언제나 변호하고 보존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사도신조와 니캐아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받아들인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의 교부들이 합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인다.
Ⅹ.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 제 1장 성서에 관하여
1)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업적이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권능을 잘드러내므로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그것들은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기의 뜻을 자기 교회에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 진리를 보다 잘 보존하며, 육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보다 더 확고하게 설립하고 안심시키기 위하여 그 진리를 전적으로 기록하여 두시기를 원하셨으니 이것이 성서를 가장 필요한 책으로 삼으신 이유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던 종전의 방법들은 중지되었다.
2) 성서라는 이름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 이제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들을 포함하니 다음과 같다.
구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 사무엘 하, 열왕시 상, 열왕기 하, 역대기 상, 역대기 하, 에스라, 느혜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 마태복음, 마가복음,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니가 후서,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베드로 후서,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유다서, 요한 계시록.
이 모든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이어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된다.
3) 보통 외경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거룩한 영감으로 쓰인 것이 아니므로 성서의 정경의 부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외경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도 없으며, 또한 다른 인간의 저서들과 다르게 가치를 인정받거나 사용될 수가 전연 없다.
4) 우리가 성서를 믿고 또 복종해야 할 이유가 되는 이 책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되는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달린 것이다.
이렇듯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이 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5)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 따라 성서를 높이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평가하도록 인도를 받을 수 있다. 그 내용이 거룩하며 그 교리가 유효한 것, 그 문체가 장엄한 것, 모든 부분들이 조화된 것,(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일로서) 전체의 범위, 사람의 구원의 유일한 길에 관한 충분한 발견,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탁월한 것들, 또 그 책의 전체적인 완전성 등이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로 충분히 증거 하는 이론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무오의 진리와 거룩한 권위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확신은 우리의 마음에서 그 말씀으로써 증거 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에서 온다.
6)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권고는 명백하게 성서에 기록되었거나 아니면 올바르고 필연적인 결론에 의하여 성서에서 얻어낼 수 있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혹은 사람의 전통을 성서에다 아무것도, 또 아무 때에도 첨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계시된 구원에 관한 것들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인 계몽이 필요함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 예배와 교회의 행정에 관하여는 언제나 지켜야 할 말씀의 일반적인 규칙에 일치되게 자연의 이치와 그리스도인의 지각을 가지고 질서를 잡아 가야 할 경우들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 행동들과 인간 단체들과도 공통되는 경우들임을 우리는 인정한다.
7) 성서에 있는 모든 것이 한 결 같이 자명하거나 또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알고 믿고 그리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서의 이곳 아니면 저곳에서 아주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학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온당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8) 히브리어(옛날의 하나님의 백성의 국어)로 쓰인 구약성서와 희랍어(신약 성서가 기록되던 때에 여러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신약성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감으로 씌었고 그리고 그의 각별한 보호와 섭리로써 모든 시대를 걸쳐 순전하게 보존되었으므로 신빙성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관한 모든 논쟁에 있어서 교회가 최후적으로 성서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읽을 권리와 또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읽고 연구하도록 명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성서의 원어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통속어로 번역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 안에서 풍부하게 살아남아 그들이 온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인내와 성서의 위로를 통하여 소망을 갖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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