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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의 5대교리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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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1:59 조회6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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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세는 무한하다. "땅의 모든 거민이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4:35) 성경의 어디에 하나님이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납득시킬려고 충고하고 주장해도 그 피조물인 어떤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가 없었다고 써있는가? 만일 하나님의 소명이 유효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나는 모든 인간이 구원되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뜻이 아닌 까닭으로 나는 드디어 할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 상상하는 따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성경에 가르침에 순응한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이 그와 같이 자기 자신의 피조물에 지시되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구원에 관해서 그리스도가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는 바울의 언명(3:11) 에 첨가하기를 구원 사업에 관해서 인간 자신은 전연 무력하며, 자기 자신 안에는 구원에 해당될 만한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해도 된다. 우리가 복음은 충고가 아니고 좋은 소식이란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우리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를 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고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주 예수께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하신 바 구속의 업을 다 이루었다 고 선언한 그 의미는 전부 성취했다, 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의 입장은 트프레디의 말과 같이 자유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또는 거절하는 힘을 지니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아니, 당신은 속죄를 이루었다. (성취했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일부를 성취했을 뿐이었고 그 위에 인간 자신이 무엇인가를 더해야만 된다. 그렇게 못하면 당신이 해낸 전부는 무로 돌아갈 것이다. 하고 말해야만 되는 것이다. 알미니안의 체계에는 언제나 보편적주의적 맥박이 농후하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한 결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성령이 속죄의 은혜를 모든 인간에게 가할 수가 있다면 충분히 다음의 두 가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1)모든 사람은 한 결 같이 구원된다.

2)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하는 일체의 일은 인간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은 다만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데 맡겨둔다.

전자는 성경에 모순된다. 후자에 관해서 말한다면 만일 하나님이 그 구원의 모든 사업을 하신 후에 이것을 받아들이든가? 거부하든 간에, 인간에게 맡겨둔다 판정한다면, 전능한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거부권을 인간에게 주고 그리고 구원은 구극에 가서 인간에 손에 달려있는 것이 된다. 이 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아무리 구원 사업에 대부분을 하실려고 해도 결국 인간의 최후가 요인이 된다. 구원하러 오는 이는 그 자신에게 무엇인가 소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멸망하는 자에 대해서 무엇인가? 자랑할 만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멸망하는 자에게 경멸의 손가락을 내밀어 너는 나와 한가지로 좋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거절하고 나는 받아 들였다. 그런고로 너는 괴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자랑하게 된다.

이것은 바울이 언명하는 바대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라고 한 말씀과 칼빈주의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칼빈주의의 인간은 믿어도 하나님의 대해서 돌아가는 것을 그 뜻과 반대로 강제당하고, 구원에 일에 관해서는 인간이 기계와 한 가지가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목석과 같이 또 노예와 한가지로 취급되어 그 의지와 반대로 구원을 강제로 구하도록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성령님의 빛에 비쳐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에 대해서, 죄에 관해서, 전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서 그 사람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비심과 은혜를 찬미하고 인격적으로 순종하도록 기분 좋은 속박아래 놓아두시는 것이다.

중생된 자는 새로운 동기와 소원에 의해서 그 자신이 지배되고 있는 것으로 발견하고, 또 과거에는 미워한 것을 지금 사랑하고 요구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어떠한 외부적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영혼 안에 창조되는 바, 새 생명의 원리에서만 달성되고 그리고 다만 그가 구하는 영의 식물에 의해서만 그 혼은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영적 율법은 선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여기 대한 유비는 세상에 흔히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로서 법률 아래 있는 국민의 대부분은 그 국가 또는 민족의 법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는 위정자나 경찰관이 친구 같이 보인다.

그들은 국민이 존경하고 기뻐하고 권하는 관헌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국민에게 있어서 법률은 그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 또 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비유인긴 하지만 극악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가? 그 사정은 전연 다르다. 그는 아마도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자세하게 법률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법률의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판결을 무효로 하기 위해서 법률을 공부한다. 그는 언제나 공포가운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 밀실에 방탄 커텐을 달고 경찰관이나 그 밖의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겁내며 언제나 권총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그는 언제나 속박 아래 있다. 그의 자유사상은 경찰관을 물리치는 일이고 법정을 매수하는 일이며 그가 한 그 일에 관해서 사회의 습관과 법률을 비판할 것이다.

유효적 은총이라 하는 특별은총은 때로는 불가항력적 은혜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불가항력적 은혜란 말은 인간위에 있는 압제적인 힘이 가해짐으로서 인간이 그 뜻에 위반되어 행동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암시를 받기가 쉽고 잘못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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