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신 비밀 남보석 마태복음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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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1 20:06 조회5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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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πνεύματί 푸뉴마티)
이는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단어 이다.
가난한 자는 (πτωχοί 프톡코이)
이는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영안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기에 이것들을 비우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종교, 잘못된 사상, 잘 못된 양심, 잘못된 영을 비우라는 것이다. 당시에서는 유대교를 버리는 것이요.
이단 사이비를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요. 영이 바뀌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이 있나니 (Μακάριοί 마카리오이)
행복이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으나 이는 너무나 소극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축제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본문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옛것들로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서 준비한 것을 우리는 영안으로 얻을 수가 있다.
‘마카리오이’는 실제적으로 하늘의 것을 얻고 누림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것을 인간에게 허락하는 것을 의미할 때 이 헬라어의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주여 나로 내려놓게 하시옵소서!
아님 주여! 나의 영을 비워주소서!
아니면 나의 영이 오직 주님께만 사용되기 원합니다. 아멘~
결국 3절은 사람의 영과 관계가 있는 말씀이다.
사람의 영안에는 불필요한 옛것들로 채워져 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새것으로 채워야 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지식, 옛 종교, 옛 습관들을 모두 비워야 한다.
그래야 새것으로 우리에게 배부르도록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가장 3절을 번역한 것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해석들이다.
마음이 겸손한 자는 복이 있나니, 생각이 겸손한 자는 행복하리니 등등의 해석들은 매우 소극적인 해석이며 진정한 주님의 의도를 알려 줄 수가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πενθουντες οί 펜둔테스 오이)
이 의미는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통곡하는 자의 애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안타까워 우는 애통이 있는가?
우리가 범죄하여 흐르는 눈물은 너무 많다. 그러나 안타까워 통곡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과 이단 사이비 종파의 지도자와 신도들의 의해 멸시와 조롱당하심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울어 보았는가?
또한 사단과 귀신들에게 미혹을 받아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세상의 임금 마귀의 의해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얼마나 우리는 울어 보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한 자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함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παρακληθήσουνται ότι 파라크레데순타이 호티)
위로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주님이 오셔서 씻어 주시고 위로하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령을 통해 주시는 위로의 말씀으로 또한 영의 찬양으로 인해 주시는 위로 등등 너무나 많은 위로의 방법들을 준비해 놓으셨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모욕을 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을 받는다.
성령님은 방해를 받으신다.
교회는 타락하여 간다.
우리의 자아는 부패되고 세상은 너무나 악해만 간다.
애통하자 반드시 위로가 있을 것이다. 아멘!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πραείς οί 프라에이스 오이)
당시 세상의 핍박과 반대에 대적하지 않고 그것을 당연히 받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온유한 사람은 싸우지 않고 대항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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