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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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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9 17:31 조회5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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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인친 바다.”

 

8. “믿음이라는 말에 대한 여러 가지 용납할 수 없는 정의들

 

1) 내실적(內實的) 신앙과 형식적 신앙

칼빈은 내실적 신앙과 형식적 신앙이라는 무가치한 구별을 논박한다.

먼저 칼빈은 이러한 사람들(Lombard, Aquinas)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없는 신념을 감히 신앙이란 이름으로 장식한다면서, 그들은 신앙과 찬동을 동일시하며,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도 성경이 제시하는 것을 동의함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신앙을 얻는 것인지 아니면 성령께서 신앙을 통해서 사람이 양자가 된 것을 증거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생각 속에는 성령의 독특한 선물에 대해서는 전연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칼빈은 믿음은 그 시초에서 화해를 내포하는 것이며 이 화해에 의해서 사람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간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칼빈은 이 논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충분하다면서, 그 근거로 찬동이라는 것은 두뇌에 속했다기보다 마음에 속했으며, 지성보다는 감성에 속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믿어 순종하는 것으로 불리우며(1:5), 주께서도 이 이외의 복종을 원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따라서 칼빈에 따르면, 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며 한 전인(全人)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지성(mind)을 사용하여 마음(heart)에 적용되며 의지적 항복(복종)이 수반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믿음의 본질은 우리의 지정의(知情意)를 통한 확신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칼빈은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기초로 삼고 있는데, 그리스도를 알려면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믿음을 경건한 성향에서 분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점을 덧붙인다.

 

2) 고린도전서 13:2- 내실적 신앙과 형식적 신앙의 차이를 증명한다.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

바울사도는 성령의 각종 은사들-방언과 능력과 예언 등(고전 12:4-10)을 논하고 난 후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이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여 교회 전체에 큰 유익을 주라고 권고한 다음에 이어 제일 좋은 길을 보여주겠다고 한다(고전 12:31).

즉 이런 모든 은사들은 그 자체로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사랑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 은사들의 목적은 원래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었으므로 이 일에 이바지하지 못할 때에는 은사의 힘을 잃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능력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믿음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칼빈은 성경은 오로지 믿음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으며, 복음서의 이야기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진리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의(神意)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교훈을 전혀 무시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경고와 약속에 다소의 충격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불경한 태도로 공격하거나 거부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복종하는 체하는 하지만, 이는 일종의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은 잘못 사용하는 것이라 칼빈은 지적한다.

3) “형식적신앙을 환상에 불과하다.

칼빈은 이런 믿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믿음의 그림자나 외형에 불과하며, 믿음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고 한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잠시 동안 믿다가(8:13),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기 전에 기운이 막혀버리거나, 심지어는 뿌리를 박기도 전에 즉시 시들어 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8:6-7).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조금 맛보고 더욱 욕심이 나서 말씀을 붙잡으며 그 거룩한 힘을 느끼지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뿐 아니라 자기 생각에도 믿는 것 같은 그릇된 인상을 준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보이는 존경이 곧 경건이라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면 불경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동의는 어떤 종류이든 간에 마음속까지 침투하지 못하며, 정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칼빈은 이런 믿음의 그림자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서 마귀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4) 버림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있는가?

바울사도는 믿음은 선택의 결과라고 했는데(살전 1:4-5), 그렇다면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이들도 하늘의 은사를 맛본다고 하거나(6:4-6), 그리스도께서 그들도 잠시 동안 믿는다고 하셨는데(8:13) 이 의미는 무엇일까?

칼빈은 이것은 그들이 영적인 은혜의 힘과 믿음의 확실한 빛에 굳게 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주께서 그들의 죄를 더욱 명백하게 하며 변명할 여지를 주시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에 잠입하여 양자로 삼는 영은 받지 못하더라도 주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믿음과 관련하여 선택받은 자와 버림받은 사람을 구별한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과 일시적인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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