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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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4:42 조회4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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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나타난 축복의 개념은 구약성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워졌고 모세를 통해 선언되어졌고 다윗을 통해 확신되었던 언약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16) 신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갖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뚜렷히 나타나며 이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는가 하는 것이 드러난다.17)
신약에서 축복을 나타내는 언어인 eulogeo의 어간인 eulog가 사용된 상황을 분석해 보면, 두 가지로 특징 되어진다. 하나는 축복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구원하시는 행위를 나타내며 (갈 3: 8, 9; 행 3: 25, 6; 엡 1: 3) 또 하나는 구약에서 말해지는 형태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축복개념이다. 이런 구절들은 주로 복음서나 히브리서에서 발견된다.18) 이와 같은 축복의 두가지 용도는 한국교회 안에 축복의 성취에 대한 두가지 견해를 갖게 만들었는데 하나는 축복이 영적인 구원과 구약적인 물질의 형통까지 다 포함한다고 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도말하셨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고 영적인 것과 더불어 모든 물질적인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인 신약의 교회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성령님의 사역에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지금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기사와 이적 등의 모든 신령한 은사가 나타난다고 본다. 또하나는 기독교인이 영적인 것보다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을 강조하게 되면 물질주의(Mammonism)에 빠지게 된다는 것으로 물질적인 풍성함도 구속적 언약이라는 점에서 이해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모든 축복은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이와같은 약속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더불어 사라졌으며 신약의 경우에 개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19) 이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성취된(Once for All) 구속사역에 대한 강조를 두는 것으로 지금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기사와 이적 등의 모든 신령한 은사가 계속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Claus Westermann의 지적과 같이 신약성경의 축복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말씀이 그리스도안에서의 영적인 구속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구약적인 물질적 현상 즉 생육, 번성, 번창, 열매맺음 등도 포함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20) 사실상 신약성경에 나오는 축복의 개념은 그리스도안에서 구원하시는 행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구약성경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물질적 형통에 대한 또다른 면에서의 요소가 축복의 개념 속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Claus Westermann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함에 대한 메세지와 더불어 병을 낫게 하는 것과 사람들을 돕는 사명까지 함께 부여받았다. 비록 치유하는 것과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이 천국복음의 메세지를 수행하는 표적으로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치유와 사람들을 돕는 일은 예수님의 사역과 부합된다는 면에서 결코 등한히 될 수 없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가 예수님의 수난,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라고 보았지만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걸음에는 늘 그의 백성의 고난에 대해 동정하시고 또 그들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를 위하여 이적을 베푸시던 것들도 함께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21)
신약성경은 약속의 씨요 구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원수 사탄을 물리치시고 물질과 영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참 축복에의 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증거 한다. Claus Westermann은 이와 같은 신약성경의 축복개념은 구약선지자 이사야의 말과같이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으로 오신 예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Shalom과 같은 Eirene속에 가장 잘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평강은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자유, 고요한 안전의 확보, 풍성함과 생각될 수 있는 한 최대의 복락 등이다.22)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와 연약함과 저주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안에서 새롭고 풍성한 삶을 마련하셨다. Herman Ridderbos의 말과 같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지고 극치에 이른 위대한 구원의 거룩한 사역이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역사의 극점을 나타내며 은혜와 심판을 가져오며 우주적인 차원이고 시간과 영원을 채우는 총체적인 시각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23)
B.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메시야 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John Wimber에 따르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표징중의 하나는 그의 사역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능력은 단순히 논리적 증거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일을 통해 나타났다.24)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필요뿐 아니라 육체적 필요까지 채우시는 구속주이셨다. 약속된 여인의 씨로서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부수시기 위해 오셨고 또한 인류를 그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 전자는 이유(Cause)를 강조한 것이요 후자는 결과(Result)를 강조한 것으로 두 가지를 통해서 폭넓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모든 축복은 신약에서 성취되었다.
누가복음 10:23-4 에서 예수님은 증거 하시기를 ---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과 기사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대한 준비일 뿐아니라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저희 가운데 임한 증거이기도 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뒤따른 기사와 표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뿐 아니라 신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성장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했다. 메시야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증거이면서 동시에 인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진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내는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John Wimber의 신학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George E. Ladd에 따르면,
귀신축출 등의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종말론적인 점에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그들의 병이나 귀신들림으로부터 구해 내는 마술사가 아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의 권세를 물리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신다.25)
이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통해 John Wimber는 그의 기사와 이적의 사역에 대한 신학적 기초를 세우는데, 그에 따르면, 하나님나라의 왕국은 오는세대(the Age to Come)에 속한 곳인데 그것이 현세대(This Present Evil Age)의 왕국인 사탄의 나라에 침범해 들어옴으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게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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