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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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26 조회6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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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시와 인간 안에 있는 자연의 빛을 적절히 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 7장~9장까지는 가장 핵심이 되는 영역으로, 로마 가톨릭과 같이 성경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권위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 저자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아닌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통하여 조명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의 저자는 성령이다.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이 신자의 신앙과 삶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권위이신데, 이러한 성령께서 말씀에 의해 그리고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가운데 신자의 마음속에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속에서 말씀하신다는 사실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고 본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와 관련하여 성경의 자증성(自證性)을 7장에서
3), 그리고 성경의 신임성(信任性)을 8장에서 지적하고 있으며, 성경과 성령의 통일성을 9장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자증성과 신임성은 성령의 증거로 드러난다고 보는데, 이러한 점에서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도 칼빈의 논의를 따라 ‘성령의 증거’에 관하여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는 성령의 증거로 인해 새로운 계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둘째는 성령의 증거는 믿음의 작용인(作用因)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신자의 믿음 체험 그 자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칼빈은 9장에서 광신주의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데, 광신주의자로서의 그의 비판대상은 주로 재세례파와 합리주의자 및 직통계시자들이었다.
여기서 그는 말씀 없는 성령은 망상이요, 성령 없는 말씀은 죽어있다며, 말씀과 성령은 항상 함께 가며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칼빈은 10장의 결론 부분에서 창조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 지식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지식이 일치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는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모든 피조물에 새겨져 빛나고 있는 지식과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 즉 특히 하나님의 속성(영원성, 자존성, 완전성 등)은 먼저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며, 나아가 이 지식으로 우리는 완전무결한 생활과 거짓 없는 순종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동시에 그의 선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성경관을 살펴보면서 이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칼빈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주장하였는가의 문제이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벤쟈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물론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래서 그 위에는 지울 수 없이 인간 저작의 흔적이 새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성령의 강력한 영향 하에 기록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성령께서는 인간 저자의 단어 선택에 있어서까지 간섭하셨으며(축자 영감), 성경이 기록될 때 신적 저작과 불일치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로부터 지켜지도록 감독하셨다.
이로써 성령께서는 성경 기자(記者)들이 항상 전제로 내걸고 또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성경이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책이 되게끔 하신 것이다”(무오성)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칼빈의 신학사상, 좁게는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위의 워필드와 같은 주장을 찾아볼 수 있을까?
칼빈의 성경의 무오성 주장과 가장 관련이 있는 기록을 찾는다면 아마 이미 살펴본 7장과 8장에서일 것 같다.
칼빈은 성경의 유일한 책임 있는 저자로 성령을 들고 있으며, 이 성령이라는 단일성 앞에서 인간 저자들의 다양성은 사라져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 자신만이 자기 말씀의 합당한 증인이 되시는 것처럼, 그 말씀도 성령의 내적인 증거에 의하여 확증되기 전에는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말씀을 선지자들이 충성스럽게 선포하였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스스로 성령을 통하여 자증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베드로와 마태 등 성경 저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전에는 일반 대중에게 비천한 자로 멸시를 받던 그들이 갑자기 하늘나라의 신비를 장엄하게 강론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성령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사실 그 자체는 소리 높여 부르짖을 것이다.”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점 들을 종합해 보면, 칼빈 역시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칼빈이 축자영감설을 인정하였는가의 문제인데,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칼빈이 이를 인정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제 성경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 칼빈의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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