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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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44 조회5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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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이래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라고 믿는다.
구세주로부터 발한 일체의 선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세계를 주름잡고 호령하던 군장 나폴레옹도 "성경은 단순한 서작이 아니다. 실로 산 것이다.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였고 영국의 빅토리아(Victoria)여왕은 "성경은 영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세계의 대저술가와 성경에 관하여 높이 평가하기를 다니엘 웹스터(Danier Webster)와 같은 사전 저술가는 "만약 우리들이 성경의 가르치는 원리를 잘 지킨다면 우리들의 나라는 번영하고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그 성경의 교훈과 권위를 잊어버린다면 최후의 파멸이 우리를 누르고 우리들의 영광을 암흑의 심연에 매장하여 버릴 것도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고, "성서는 인류의 영혼으로부터 밝혀진 언어에 의한 가장 진실한 발언이며, 내가 저작한 것에 어떤 공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내 어머님께서 매일같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어주고 그곳을 나에게 암송하게 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고 죤 러스킨은 말했다.
화라 휄톤은 "성서 안에서 우리들은 인류에게 우주를 열고, 또 인류에게 그 자신의 비밀을 열어주는 유일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했고, "나의 곤혹과 비상할 때, 성경은 항상 나에게 광명과 힘을 주심에 있어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일본의 쓰가모도 도라지씨는 "날마다 성서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실로 그렇다. 위드로 윌슨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나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내가 성경을 얼마나 충실히 연구하는지 그 비례에 따라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 하면서, 그는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의 마음, 그대의 행복, 그대의 의무의 열쇠가 이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완전한 인생을 지시해 주는 확실한 인도자이다.
그것은 영적 양식의 근원이요, 선량한 생활로 인도하는 영감이다(J.에드가 후버).
이 성경은 평안하고 행복할 때만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고 답답하고 실망과 위기와 사망의 위기에 더욱 좋은 인도자요, 고귀한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주는 선생이다.
7. 결 론
1)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는 안내자요 교사로서 필요하다.
(1)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에서 뿐이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모든 사람의 눈에 명백하게 비치는 광채는, 인간들로 하여금 배은망덕에 대한 일체의 변명을 못하게 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동일한 죄책 하에 두시기 위해, 피조물에게서 생생하게 표현된 자신의 임재를 그들 하나, 하나에게 예외 없이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확히 우리를 우주의 창조주 앞으로 인도할 다른 훌륭한 조력자가 더 첨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의 빛을 더하셔서, 이 말씀으로 구원을 알게 하셨던 것은 조금도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에게 더 가깝고 더 친밀하게 모으고자 하셨던 자들을 이 특권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로 간주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유대인을 자기 백성으로 정하신 후, 다른 백성들처럼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한 울타리 안에 둘러 싸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순수한 지식 안에 우리를 붙잡아 두시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데 이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 앞에 견고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곧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노인이나 눈이 흐린 사람, 또는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내보이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겨우 알 수 있겠지만 거의 두 낱말도 해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똑똑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혼란한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우리의 우둔함을 쫓아 버리며,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교회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무언의 교사를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거룩하신 입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이 어떤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이 경배를 받아야 할 그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교회를 위하여 이 계획을 세우시고, 일반적인 증거 외에 자신의 말씀을 첨가하셨다. 이 말씀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보다 더 확실한 표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두 가지 지식)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그 밖의 족장들이 자신들을 불신자와 구별 짓게 한, 하나님에 관한 그 깊은 지식에 도달한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이러한 도움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영생의 소망을 가지도록 그들을 조명하여 준 그 특수한 신앙 교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 왜냐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알되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구속주로서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조금도 의심 없이 말씀을 통하여 이 두 지식에 다 같이 도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순서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주요 통치자로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지식이 먼저 오게 된다.
다음으로,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다른 내적 지식이 여기에 가해졌는데, 이 지식에 의해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요, 지음 받은 만물의 유일한 원작자, 통치자로 알 뿐만 아니라, 중보자의 위격으로 나타나신 구속주로서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세계의 타락과 자연의 부패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구제책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양자로 삼으신 언약에 대하여, 그리고 신자들을 항상 불신자에게서 성별 하였다는 일부의 교리에 대하여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증거의 목적은, 성경에는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미로에서 어떤 불확실한 신격을 찾지 않도록 하나님에 대하여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이 성경에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말씀이나 환상으로 나타내셨든지 혹은 사람들의 사역이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족장들에게 계시하셨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자손들에게 전승하여야 할 것을, 그들의 마음에 알리셨다. 그들 마음에 교리에 대한 견고한 확실성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배운 지식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확신하고 이해하였던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통해 일체의 인간적인 견해를 능가하는 확실한 신앙, 곧 영원히 불변하는 신앙을 주셨기 때문이다. 마침내는 진리가 계속적인 교훈을 통하여 대대로 이 세상에 영원히 남겨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족장들에게 맡기셨던 그 말씀을, 말하자면 공적인 기록으로 엮으실 것을 결심하셨다.
이러한 계획 밑에서 율법이 공포되었으며, 그 후에 율법의 선지자들이 해석자로서 또한 첨가되었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 4)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여기서 연유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신앙과 회개의 특수한 교리 외에도,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된 일군의 신들과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명백한 특징과 증거들로써, 우주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신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이 가장 영광스러운 극장의 관객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눈을 돌려 하나님의 사역을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러나 보다 더 월등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흑암에서 태어난 자가 점점 더 둔감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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