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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0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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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6:21 조회6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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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만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멸망하는 자에게 경멸의 손가락을 내밀어 너는 나와 한가지로 좋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거절하고 나는 받아 들였다.

그런고로 너는 괴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자랑하게 된다.

이것은 바울이 언명하는 바대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라고 한 말씀과 칼빈주의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칼빈주의의 인간은 믿어도 하나님의 대해서 돌아가는 것을 그 뜻과 반대로 강제당하고, 구원에 일에 관해서는 인간이 기계와 한 가지가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목석과 같이 또 노예와 한가지로 취급되어 그 의지와 반대로 구원을 강제로 구하도록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성령님의 빛에 비쳐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에 대해서, 죄에 관해서, 전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서 그 사람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비심과 은혜를 찬미하고 인격적으로 순종하도록 기분 좋은 속박아래 놓아두시는 것이다.

중생된 자는 새로운 동기와 소원에 의해서 그 자신이 지배되고 있는 것으로 발견하고, 또 과거에는 미워한 것을 지금 사랑하고 요구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어떠한 외부적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영혼 안에 창조되는 바, 새 생명의 원리에서만 달성되고 그리고 다만 그가 구하는 영의 식물에 의해서만 그 혼은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영적 율법은 선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여기 대한 유비는 세상에 흔히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로서 법률 아래 있는 국민의 대부분은 그 국가 또는 민족의 법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는 위정자나 경찰관이 친구 같이 보인다. 그들은 국민이 존경하고 기뻐하고 권하는 관헌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국민에게 있어서 법률은 그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 또 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비유인긴 하지만 극악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가? 그 사정은 전연 다르다. 그는 아마도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자세하게 법률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법률의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판결을 무효로 하기 위해서 법률을 공부한다. 그는 언제나 공포가운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 밀실에 방탄 커텐을 달고 경찰관이나 그 밖의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겁내며 언제나 권총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그는 언제나 속박 아래 있다.

의 자유사상은 경찰관을 물리치는 일이고 법정을 매수하는 일이며 그가 한 그 일에 관해서 사회의 습관과 법률을 비판할 것이다.

유효적 은총이라 하는 특별은총은 때로는 불가항력적 은혜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불가항력적 은혜란 말은 인간위에 있는 압제적인 힘이 가해짐으로서 인간이 그 뜻에 위반되어 행동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암시를 받기가 쉽고 잘못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의미하는 바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선택은 하나님의 힘에 의한 감화이며 자비로운 선택의 행위에 주어지는 것이다.

헤이 와트 박사는 과거의 연주된 가장 아름다운 음악에 의해서 혹은 치축을 뒤흔든 다고 생각할 만큼 큰 우뢰에 의해서 무덤 속에 시체가 소생할 것인가? 죄와 허물에 의해서 죽은 죄인이 율법이란 우뢰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을 것인가?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에 있는 것과 한가지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

Calvinism and Arminianism

3.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비교 연구

 

1) 서론

칼빈주의(Calvinism)와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는 신학적 성경적 관점에서 각기 다른 견해를 취하고 있다. 이미 17세기의 돌트회의(The Synod of Dort)를 기점으로 신학 논쟁을 빚어 온 두 신학간의 불협화음은 오늘날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두개의 커다란 신학적 기둥으로 여러 교단과 신학교의 신학 체계를 다져 가고 있다.

 

2) 돌트회의(The Synod of Dort)

1618 113일 화란의 돌트(Dordrecht)에서는 화란개혁주의교회를 주축으로 국가적 종교 모임인 돌트회의(Synod of Dort)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의 주요 관건은 다음의 3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Erastianism건으로 정부가 교회를 통제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고, 둘째는 ErasmusCoornheert를 축으로 성경적 고백 보다. 헬라주의적 경향으로 치우치는 반고 백적 인본주의(Anti-confessional Humanism)에 대한 문제수습이며, 세 번째는 알미니안들이 채택한 “1610년 항의서”(The Remonstrance of 1610)에 대한 문제였다.

본 논고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신학적 차이를 살펴보는데 그 의의가 있으므로 세 번째 문제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하고자 한다.

 

3) Jacobus ArminiusThe Remonstrance

돌트회의는 그 발생 원인이 회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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