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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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21:34 조회5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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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오히려 욥을 판단하고 심판하기에 이렀음을 아는가?
여인도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오히려 상처받고 고통만 당하였다.
실제로 여인의 경우처럼 발전이 없고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형제들의 오해로 여인을 사정없이 책망했듯이 여인의 성숙을 위해 거칠게 잔인하게 처리되도록 허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속에 주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시기 위해 때로는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정도까지 연단하시고 역사하심을 기억하기 바란다.
8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 랑 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이제 여인은 자신보다 신앙이 어린 여인들에게로 방향을 바꾼다. 여인은 진심으로 자기중심적 상태로는 주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향해 얼굴을 감추어 버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신의 실패감에 여인은 주안에서 어린아이에 불과한 예루살렘 여인들이 자신에게 혹시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여 간청하듯 부탁한다.
이것은 여인이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이라 말한 것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여인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여인은 심각한 고난과 어두움과 불만족의 갈증 상태에서 이런 말은 이해 할 수 없다.
이는 여인의 영적 생활이 많이 성숙했음을 보인다.
지금 여인은 환경을 지배하고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절제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 대한 심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축복인가?
우리 안에도 이렇게 늘 성장하는 축복이 필요하다
9절 “여자 중 극히 어여뿐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 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 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 하는가?”
지금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새 영의 충분한 생명은 아직 갖지 못했으나 술람미의 영적 수준을 인정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인의 속에 있는 영적 수준과 낮아진 겸손은 주님의 성격과 주님 안에 있는 영적인 것을 눈치 챌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높은 영적 신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인에게 풍기는 이런 특징들은 이들의 자랑거리가 된다.
바로 그 순간 여인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빛을 잃었다
“여인 중에 어여뿐 자야” 라고 말한다.
이는 미인 중에 미인인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여인은 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비교할 때 이 여인은 잘 단련된 여인이다.
여인의 인격에는 능히 비교할 수 있는 인격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마치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에서 승함과 같은 것이다.)
만왕의 왕 주님은 세상의 어떤 사랑의 대상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는 분이시다.
그리고 예루살렘 여인들로부터의 질문은 자기들이 은혜 안에 있기는 하나 주님 자신의 깊은 계시는 받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은 이 여인으로부터 보여 진 빛을 통해서 주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인이 주님의 대해 인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은 모두 남에게 한 것이고 주님에게 직접 한 것은 없다.
반대로 주님께서 여인에 대해 말할 때는 언제나 여인에게 직접 말하고 또 말할 때 완전히 자유 함을 체험하고 느낀다.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수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타당한 일인 것인가?
예루살렘 여인들의 질문에 자극되어 여인은 주님에 대해 자기의 모습을 간증한다.
이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밝고 명료하게 나타냈던 과거의 계시를 여인의 영 안에 회복되게 하신다.
여인에게 잘 알려진 주님의 형상을 회고해 봄으로 여인은 즉시 주님을 과거처럼 감사의 대상으로 모실 수 있게 된다.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지금 여인은 주님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말해주고 있으며 주님과 죄인들과 얼마나 구별되어 있는 가를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의 흰색은 붉고도 흰색이다.
즉 건강한 사람의 혈색을 말하는 흰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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