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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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15:55 조회4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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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우리가 은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영적인 나타남이기 보다 육신적인 어떤 재능이라고 보아야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구체화된 어떤 능력들이 성령의 은사들과 비슷하다 할지라도 사실은 육체적인 재능인 경우가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은사(Charisma)라고 칭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건은 나타나는 능력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축복이다.50)
뿐만아니라 성경은 성령의 은사들과 성령의 열매를 구별하신다. 갈라디아서 5: 22-23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는 신자가 자라고 성숙하며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성령이 충만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모든 신자는 그들의 신앙 안에서 자라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신자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성령님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개발되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사역속에서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해 허락해 주시는 성령의 은사들과는 구별된다. 성령의 은사가 하나님의 사역속에서 무었을 감당해서 일해야 할 것(Should Do)인가 한다면 성령의 열매는 신자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Should Be)인가에 목적이 있다. James I. Packer는 John Owen의 주장을 따라 "은혜가 없으면서도 은사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일을 수행함으로 영적인 유익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즉 성령의 내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외인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사실상 성령의 은사들을 성령의 열매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는 영적으로 비뚤어져 있는 것이며 교정이 필요하다.51) 실상에 있어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의 영성의 차이는 성령을 통한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라는 실제적 내용에 있어서 보다도 사용하는 어휘와 집단관계, 그리고 자기표현에서 더 많이 드러날뿐 사실상 은사의 체험은 때때로 주장되는 것보다 덜 독특하다는 점을 주의해 살펴봐야 된다.52)
C.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성령 님
1.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명을 이루는 주체자로서의 성령님
마태복음 28: 18-20 에 보면 예수님께서 명하신 선교 대사명이 나온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말씀하시며,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시고, 선교 대사명의 목적은 제자를 삼는 것이며, 예수님의 언약은 재림까지 변함없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세가 제자들에게 위임되어야 비로소 제자를 삼는 선교대사명의 목적이 시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위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위임은 사도행전 1:8 에 나온 바와 같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말씀 속에서 성령의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체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신자는 먼저 성령의 임하심으로 말미암는 권능을 받아야 된다.
김진애는 주장하기를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을 선교하도록 갖추는데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 대중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외치는 자가 되었고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성령은 선교의 주체자이시며 저자이시고 주장자이시며 교회안에서 선교를 일으키시는 분이시다.53)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사 땅끝까지 그 아들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갖추신다. 이런의미에서 복음전도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주심인 능력전도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잘 구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2. 능력전도
능력전도는 성령님께서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사람이 행사하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전도이다. 성령님을 통해서 인간이 보통적으로는 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말하고 행하게 된다. J. Herbert Kane의 지적처럼 1980년대의 교회성장운동에는 (예외는 있지만) 인간적인 요소들이 지나치게 강조된 반면에 신적인 요소가 등한히 되었다. 참된 의미의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요소보다도 신적인 요소가 강조되어야 한다.54) (스가랴 4:6) 이런 점에서 Eddie Gibbs의 "인간적인 원리들(Principles)은 성령의 능력(Power)를 대치할 수 없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원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는 관찰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참된 교회성장은 원리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원리가 교회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니나 교회성장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증적인 역할을 한다.55) John Wimber는 서구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이성적이고 경험위주의 세계관이 영적세계에 대한 문을 열어 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교회가 기사와 이적 등의 성령님께서 활동하시는 능력을 부인함으로 생동감을 잃었다고 지적하며 사도적 현상이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나타나는 능력전도가 오늘날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56) Arthur F. Glasser에 따르면 "능력전도의 기본전제는 복음의 효과적인 전달인데,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능력을 지각하고 나타내야 한다는 점에서 덧붙여진(plus)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보았다.57) Peter Wagner는 능력전도를 정의하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섬기는 거짓된 신들과 영들보다 훨씬 강하심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실제적인 시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능력의 마찰이 나타날때 모든경우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교회가 부흥하게 된다.58)
John Wimber는 자신의 빈야드식 목회에 결정적인 신학적 동기를 부여한 사람으로 George E. Ladd를 드는데, 그의 하나님나라의 현재성(Already)과 미래성 개념(Not Yet)은 빈야드운동의 중요한 원리중 하나인 능력사역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Wimber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생애 모든 기간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에게 내어 준바 되었던 이 세상을 다시 회복하시어 아버지께 바치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의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신 갈보리와 부활의 사건 이후에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구원의 소식을 교회에 위임하셨으니, 빈야드교회는 예수의 이름과 권세로 사탄을 멸하고 모든 문화와 족속에게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도록 사역할 비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야드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예를 들면, 성결, 기도, 찬송, 봉사, 전도, 형제우애, 가정생활, 사회생활등의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에 해당되는 본질적인 것으로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능력사역이다.
민병길은 이 능력사역이 인간구원과 사회구원과 교회부흥에 멈출 수 없고 천국을 이루는데 맞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는 능력사역을 천국복음을 가르치는(성경공부) 말씀사역과 구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병자를 고치는 복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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