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구원론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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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16:18 조회5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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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그리스도의 대속
우리의 구원은 전체적으로 또 그 모든 부분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안다.(행4:12)
우리가 구원을 구한다면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은 ‘그에게서’ 온다는 것을 가르친다.(고전1:30)
그리스도는 그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을 우리에게 얻어 주셨다. 하나님이 오직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을 얻어 주는 중보자로 임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연결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높은 원인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둘째 근인이 된다.
그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의 질료를 그에게서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형상인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이 말씀은 분명히 한 사실을 증명한다. 즉,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는 것이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에게 화해시키는 수단으로서 그리스도를 임명하신 것이다.(요일 2:2; 골1:19-20; 고후5:19; 엡1:6, 2:15-16; 1:4-5)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셨다.(롬3:24-25)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의를 얻어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안전하게 설 수 있다. 바울은 우리를 “값으로 샀다” (고전6:20;딤전2:5-6)고 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피로 얻은 구속을 “죄의 용서”라 한다.(골1:14)
그의 피는 우리를 위한 배상이고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는다.(골2:14; 갈2:21) 이 말씀으로 보면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있을 때에 율법에서 얻는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구해야 한다.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해 살리라”(레18:5) 우리의 행위에 약속한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서 얻는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느니라”(행13:39)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우리에게 주셨다.(갈 4:4-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만이 우리의 의로 인정된다.
Ⅲ.구원에 있어서 각 요소와 관계
1.복음의 총화로서의 회개와 죄 용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이다.
칼빈은 여기서 기독론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논하고 있다.
그는 ‘유익’이란 말과 ‘효력’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때 효력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효력이다.
그는 3가지로 이 효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회개” “죄의 용서” 그리고 “삶의 실제적 성화”이다. 이러한 효력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으면 구원의 유익은 여전히 모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이 믿음은 성령의 제일 중요한 역사이다. 우리가 기독교 강요를 읽을 때 그 순서가 의미하는 바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은혜, 곧 회개와 죄 용서는 중생과 칭의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관계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신생과 화해이다. 칼빈은 칭의 보다 회개를 먼저 논의한다.
그 이유는 회개가 거룩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또한 회개가 믿음에 앞선다는 교리를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칭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칼빈은 다른 개혁자와 다르게 회개는 믿음의 결과로 본다.
믿음을 떠나서 회개가 일어 날 수 없다. 또한 믿음과 회개는 구별할 수 있으나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회개와 죄 용서라는 두 가지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이 두 은혜는 분리되지 않는다.
2.회개와 죄 용서
1) 회개의 정의
그는 회개를 정의하기를, “우리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향하며 이전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 것이다.”
즉 회개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 쪽으로 전향하는 일인데 순수하게 또 진지하게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전향이다.
그리고 회개를 구성하는 요소는 육의 죽임과 영의 살림이다.”
칼빈은 더 구체적으로 회개의 정의를 3가지로 부연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로 삶을 전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전향은 외면적 행위뿐만 아니라 영혼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전향이다.
둘째, 회개는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는 데서 생긴다. 죄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회개는 육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것이다. 이 죽임과 살림이 회개의 구성 요소인데 옛 사람이 죽는 경험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일어난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는 옛사람의 끊임없는 죽음 (롬6:6)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부활에 참여는 하나님의 의를 쫓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칼빈은 회개를 한마디로 중생이라고 한다.
중생의 목적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회개가 중생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본다면 회개는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토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의 회개론은 성화론에 일치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성화에 대해서 살펴 볼 때에 자세히 취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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