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5대교리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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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1:58 조회6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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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알미니안의 모든 주장을 절대적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선택된 자에게 있어서, 즉,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효과적이라는 특별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에게 생기는 효과는 이 큰 목적-선택된 자의 구원-의 부수적인 것이 불과한 것이다.
4) 성도의 궁극적 구원
4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지키심의 은혜의 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실제로 부르시고 또한 성령으로써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 그 상태에 있을 것이며 또한 영원히 구원 받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 무조건적으로 영원한 생명에 택하시고 성령의 구속의 은혜를 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구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불가피적인 결론이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현재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신자들 보다 행복하긴 하지만 안전성에 있어서는 어느 거나 한가지이다.
이와 같은 선물의 수여는 그것을 받는 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계시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가 말하는 것 같이 참 그리스도 신자가 된 자에게도 멸망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들이 아직도 구원의 상태 안에 있을 동안에 이 세상에서 제거하지 않는 다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하나님이 그들의 장래의 배교를 예견하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구속되어 하늘로 옮겨간 자는 거룩한 가운데 보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만일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성도들을 그들의 자유행동을 방해하는 일 없이 보호하지 않으시겠는가?
중생된 그리스도 신자가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서 그 아들이 되는 관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지상의 아버지의 대해서 그 아들이 아들 되는 입장을 잃는 일이 없는 것과 한가지이다.
참 기독교 신자도 타락하고 멸망할 수가 있다는 사상은 중생된 영혼에 주어지고 영적 생명의 원리에 관한 개념을 잘못이해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바울은 믿는 자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다고 가르치고, 그러므로 신자는 율법아래 있지 않는 고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정죄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고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11:6)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이라 가르치고 만일 행위에 의해서 가르침의 최소 부분이라도 할려구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그는 율법의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자라"(갈5:3) 말하고 있다.
즉, 그들은 자기의 힘으로 완전하게 순종하고 그것으로 자기의 구원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무한, 신비한 책은 그들이 절대로 멸망되지 않기 위한 보증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부동이며, 하나님의 실재와 같이 불변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느니라"(요한1서4:10) 히브리서의 기자가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히12:2) 이라고 말할 때에,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자는 결코 멸망 당하는 일은 없다고 가르친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구원의 전 과정은 하나님의 의해서 계획되고, 하나님에게 인도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자가 타락하는 수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은혜를 걷어버리고 그의 구원의 방법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율법아래 되돌려 버리는 것이다. 선택된 자의 구원에 관해서 루터는 "하나님의 예정은 강하고 확실하고, 그리고 그 결과인 필연도 한가지로 불변이며 반드시 성취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더욱더 우리들의 순결을 지켜주심과 구원의 보증과 우리 자신들의 약한 성질에 의하지 않고 전혀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지지력에 의한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보전의 교리는 기독교 신자가 일시적으로나마 범죄하고 타락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다. 슬픈 일이긴 하나 우리들은 너무나 빈번하게 범죄한다. 가장 휼륭한 신자라도 일시적인 배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전연 패배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 위에 그의 은혜를 부어주시므로 가장 약한 성도도 최후적으로는 배교에서 확실히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의 개인적 경험에 관해서는 대 사도 바울조차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물론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서는 범죄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히브리서의 기자도 범죄를 하는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6)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의 상태는 전쟁과 같은 것이다. 그는 일시적으로는 실패하는 일도 있고, 어떤 때는, 전연 신앙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한번 참으로 구원된 자라면 그는 은혜에서 전연 이탈 할 수는 없다. A.H. 스트롱은 "믿음 있는 자는 마치 언덕을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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