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3/139 > 신학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학습자료실
신학과

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3/139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34 조회619회 댓글0건

본문

신학적 용어를 사용할 필요성은 있으나 이러한 용어의 지나친 논쟁으로 인하여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경계했던 것이 칼빈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신앙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하여 구별된다고 하는 이 한 점에 일치하게 된다면, 이 용어들은 잊혀 져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특히 그는 힐라리(Hilary)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자연적인 명칭들을 제시한 후에 즉시 첨가하여 이들 명칭 이외에 어떤 다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곧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며 감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고 이해력의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역시 용어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은 다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묵과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라는 용어의 필요성과 한계성을 모두 인정하였다.

따라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그 본질이 동일하다는 점과 성경이 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본질’(essence)이 하나인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성경이 한 본질 안에 셋이 있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6) 가장 중요한 개념의 의미.

따라서 칼빈은 용어 자체에 대한 논의는 이제 중단한다. 그 대신에 문제 자체로 들어간다.

그는 내가 말하는 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essence)에 있어서의 한 실재’(subsistence)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른 실재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교통할 수 없는 특성에 의하여 저들과 구별된다. 우리가 의미하는 실재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말과는 다른 무엇을 뜻하는 말이다.” 본질이란 단일하다.

말씀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심이라”(1:1)라는 사도 요한의 이 말 속에 분명히 본질은 단일성(essence as a unity)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이 성부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함께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실재의 관념이 명백해진다. 즉 실재는 본질과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어 본질과 구별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본질과 구별되는 특수한 표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세 실재는 상호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각자의 특성에 의하여 서로 구별된다고 본다.

기독교강요 제1권 제11장과 제12장은 십계명 중 제2계명을 바로 지킬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특히 교황주의자들은 봉사(dulia)와 예배(latria)를 구분하고 형상물에 대하여 경배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가 일종의 봉사로 볼려고 하지만, 칼빈은 봉사라는 개념이 예배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는 점과 말이 봉사이지 사실상은 예배라는 점에서 단호히 거절한다.

특히 교회당 내에서 형상이나 화상을 두는 것은 예배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며,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한다.

단지 이러한 형상이나 화상 그 자체가 교육을 위한 것까지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이나 화상은 역사적인 것만 인정하였다. 즉 그는 조각이나 회화에서도 역사적인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두 부류 중 전자는 교육하며 교훈하는데 다소 유익이 있으나, 후자는 쾌락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데, 교회 내에 장식되어 있는 대부분이 후자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4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는데, 삼위일체 신학에 있어 칼빈의 공헌은 지대하다고 평가된다.

 

특히 제13장에서는 본질과 본체, 위격을 언어적인 차원에서 명확히 분석함은 물론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제137절 이하에서는 성자의 영원한 신격, 성령의 영원한 신격,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 반 삼위일체 이단에 대한 논박을 하고 있다.(이 부분은 다음 달 특강 내용임).

다만 제13장 서론에서 칼빈을 통하여 얻은 삼위일체의 언어적 개념론은 성삼위 하나님은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로서의 동일본질성혹은 동질성을 지니면서도 그 위격(persona) 또는 휘포스타시스

(hypostasis)로서는 각각 고유한 특징에 의하여 구별된다는 것이다.

즉 실재(subsistence)는 본질과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어 본질과 구별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본질과 구별되는 특수한 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이와 같은 표현은 앞으로 더 분명히 밝혀지겠지만, 우선은 아리우스파나 사벨리우스파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형태론적 단일신론에 대하여 분명한 오류를 지적한 것이며, 아타나시우스와 니케아회의를 거쳐 삼위일체론이 정립된 것을 더욱 명확히 하였다고 평가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성자에 대한 아우토테오스’(스스로 하나님이심)

(self-existens, autotheos)라는 논의는 워필드가 말한 바와 같이 참으로 이단을 잠재울 수 있는 탁월한 논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삼위일체론은 결국 구원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탁월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까지의 강의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11장부터 제136항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난 강의에서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의 교회 내에서의 형상물의 설치 및 성화를 그리는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특히 교황주의자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학교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개혁신학교  |  대표자 : 남보석  |  TEL : 031-741-0175 / 070-8865-9888  |  FAX : 031-742-0175
주소 : 서울시 송파구 송이로 37가길 25로  |  사업자등록번호 : 107-89-80668
Copyright © 개혁신학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