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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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21:33 조회4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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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라도 자신이 받겠다고 자원한다.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이 듣는 구나”
이것은 주님의 죽음에서 오는 능력과 향기가 있음을 나타내려 함이 틀림없다.
실로 여인의 손에서 죽음을 통과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통과하고 있으며 마치 여인의 영 안에 솟구치는 생명이 영감으로 솟아나고 움직이는 그 힘에 의해 여인으로 하여금 문을 열도록 만든 것이다.
이제 여인은 주님을 따라 어디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그 문의 빗장은 여인의 의지로서 이 빗장의 손잡이마저 그리스도의 죽음의 향기로 채운다.
6절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응답이 없었구나.”
주님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서 순종의 반응이 보일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채찍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의 반응이 있은 후에 불순종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미련한 것인가를 알게 한다.
영적인 체험의 초기에는 순종 전에 질책이 온다.
이러한 징계의 목적은 순종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징계는 순종이 있을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다.
반면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징계와 질책이 순종 다음에 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현 시점에서 여인은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의 만족에 빠진 결과로 생기는 쓰라리고 후회스러운 감정을 맛보고 자원하여 순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여인은 안타깝게도 여인은 영안에서 주님이 다시 사라져버린 지금에 와서 후회의 깨달음이 생긴다.
지난날은 여인의 무식 때문에 주님의 함께 하심을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성질이 아주 다른 영적인 번뇌가 생긴 것이다.
여인의 영은 흑암에 갇힌 기분이다.
빛은 찾기가 매우 어렵다. 여인은 지금 자기를 부를 때 주님을 향해 나갔던 과거를 회상한다.
무슨 이유인지 여인은 지금 자신에게 분개를 금치 못한다.
여인은 내부의 영적 상태와는 달리 여인의 외적인 힘은 균형을 잡지 못한다.
외적인 힘이 약한 것에 위선적인 구실을 만들어 주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의 얼굴의 광채를 비취지 못하는가?
이러한 난관에서 움직여 주님을 부르고 주님을 추구하는 길밖에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까?
주님은 아무 데나 계시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응답을 안 하신다.
지금 주님을 찾는 여인의 자세는 지난날의 주님을 찾던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 여인은 이제 전처럼 큰길에서 있거나 도시 안에 있지 않다.
주님은 지금 보좌의 계시는 것이다. 이는 너무 새롭고 완전히 다른 깊은 것이므로 여인의 기도는 효력이 없는 것이다
7절 “성중에서 행순 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여인은 전처럼 파수꾼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여인은 파수꾼들에게 아주 변화된 아름답고 귀한 분으로 되어있다.
실로 영적으로 성장된 여인이 어찌하여 자기의 사랑을 잃게 되었을까? 이는 파수꾼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다.
그들은 여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그들의 대화와 충고는 여인에게 고통과 번민만 가져다 줄 뿐이었다.
여인은 실로 파수꾼들로 위로 받기를 원하였지만 받은 것은 꾸지람과 책망이었음을 본다.
(시편69:26)“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여인의 고통은 끝없이 보이고 있다.
여인에게는 도움의 손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여인에게 일어난 것은 여인으로 하여금 여러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들고 있다.
주님의 파수꾼인 사람은 여인이 공중 앞에서 꾸중 받는 것을 변호하기는커녕 여인의 잘못을 노출시키고 공개하는 것이다.
이들은 여인의 웃옷을 벗겨 수치를 당하게 함으로 여인을 거칠게 너무 심하게 대하여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욥기 서에 욥을 보라!
욥이 고난 속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친구들이 욥을 위로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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