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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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4 조회4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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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믿음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드디어 우리를 믿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가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믿음의 근원이며 원인이 된다.
2) 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일단 끌려가면 우리의 지성과 마음은 높이 들려 우리의 이해력은 초월한 경지에 이른다.
그 때에 우리의 영혼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 이를테면 새로 날카로운 시력을 얻어, 이전에 눈을 멀게 했던 찬란한 하늘의 비밀을 보게 된다.
또 인간적인 이해력도 이같이 성령의 빛으로 조명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일들을 드디어 참으로 맛보기 시작하며, 이전에 어리석고 미각이 둔하던 것과는 달라진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이 말씀이 선포된 모든 사람에게 비치지만, 눈먼 사람들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다. 그런데 이 점에서 우리는 원래 모두 눈이 멀었다.
따라서 성령이 내면적 교사가 되셔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길을 마련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침투할 수 없다.
3) 사람은 성령이 없이는 믿음을 기질 수 없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 안에서 “하나님이…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살후 1:11) 하시기를 기도하였는데,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믿음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부르면서, 사람 자신이 믿음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라고 첨가한다.
어거스틴(Augustinua)도 “우리 구주께서는 믿음이 공로로 인하여 오는 것이 아니고 선물로서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요 6:44),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요 6:65),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 6:44)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칼빈은 “요컨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의 힘으로 우리를 조명하셔서 믿음을 가지게 하실 때에 동시에 우리를 자신의 몸에 접붙이시므로 우리는 모든 좋은 것에 참여하게 된다”고 정리하였다.
4) 마음의 문제로서의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면, 그 말씀이 두뇌의 상층부에서 돌아다녀서는 안 되고 마음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그것은 시험의 모든 전략을 막아낼 수 있는 난공불락의 방위선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조명이 지성에 진정한 이해력을 준다면, 마음에 확신을 주는 것 또한 성령의 능력임은 더욱 분명하다.
칼빈은 “지성이 사상을 얻는 것보다 마음이 확신을 얻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성령이 날인하는 일을 맡으셔서, 이미 마음에 확실성을 심어 준 그 약속들을 마음에 인치시며, 마음을 견고하게 확립하기 위하여 보증의 직책을 맡으신 것이다(엡 1:13-14; 고후 1:21-22; 5:5).
5) 의심은 믿음을 질식시키지 못한다.
믿음은 여러 가지 의심에 시달려 신자의 마음은 평안한 때가 거의 없으며, 적어도 항상 평화로운 상태를 즐기지 못하게 하고, 어떤 공격 무기가 신자들의 마음을 흔들 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시 46:1-3). “여호와는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 3:5)는 말씀처럼, 그들은 시험의 골짜기에서 일어서며 망대 위에 굳게 선다고 칼빈은 말한다.
성경은 믿음을 격려하기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는”(시 37:7), 그리고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을 가르치고 있다(히 10:36).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 잠잠히 인내하고 기다리자. 여호와 하나님 그가 하실 것이다.”
4. 믿음에 대한 스콜라철학자의 항의를 논박함
1) 믿음의 확신에 관한 스콜라 철학자의 오류스콜라 철학자들은 “각 사람이 스스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부에 따라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도덕적 판단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덕적인 판단으로 알 수 있다고 봄으로써, 결국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일종의 보상으로 보는 어리석음도 저지르고 있다.
2)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주(內住)를 기뻐한다.
칼빈에 따르면, 스콜라 철학자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감히 자랑하는 것도 대단히 무모한 짓이라고 큰소리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정신으로 움직이며 하나님의 영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으나 올바른 기도를 인도하셔야 할 성령을 배제한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칼빈은 믿음은 특히 성령의 특별한 사역인데 그 믿음을 성령에게서 분리시키려는 것은 성령을 해하는 것이라 보면서, 성령이 자기들과 함께 계심을 감히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교만하다고 비난하는 그들의 태도는 가장 가련한 장님의 표시이다 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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