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9/139 > 신학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학습자료실
신학과

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9/139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31 조회570회 댓글0건

본문

사실 우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권위가 있을 수 없다(2:8, 31:7, 37:19; 14:3; 5:13).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형상만이 아니다. 화상 역시 동일하게 조상(造像)인 형상 못지않게 금지되어 있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2. 성경의 교부들의 주장으로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오류를 논박함

1) 우상에 대한 성경의 판단. 그레고리우스(Gregorius)우상은 무식한 사람들의 책이라고 하였지만,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며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스승이라고 한 예레미야선지자(10:8)나 하박국선지자(2:18)의 말을 살펴보면 이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라서 교황주의자들의 우상은 책의 역할을 한다는 지적은 당연히 예언자들에 의하여 정죄 받아야 할 일이다.

유대인들이 예배한 분은 오직 유일하신 참되신 하나님이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보이는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사악한 일이요 거짓된 일이다.

 

2) 교회의 교리도 우상에 대하여 달리 판단한다. “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가 다 가사적(可死的)이다라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주장한 락탄티우스(Lactantius)와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글은 물론, “형상에게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형상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명백하게 말한 어거스틴(Augustinus)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A.D 305년경 엘비라(Elvira)종교회의에서 제정된 제36장의 내용, 교회당 안에 화상이 있어서는 안 되며, 예배를 받든가 찬양받아야 할 것이 벽에 거려져서도 안 된다.”라고 기술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칼빈은 바르게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관하여 알아야 할 것을 형상 이외의 다른 자료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3) 교황주의자들의 형상물(形像物)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황주의자들이 조금이라도 수치를 느낄 줄 안다면, 형상물이 무식한 자의 책이라고 하는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든 성자의 화상(畵像) 혹은 조상(彫像)은 가장 음란한 실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울사도의 말과 같이 우리를 성부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는 것을(5:10), 충분히 또는 진실하게 배웠다고 하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무와 돌과 금, 은으로 그렇게 많은 십자가상(十字架像)을 교회의 도처에 세웠겠는가?

 

3. 조각과 회화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결과적으로 형상의 사용과 예배부패의 기원이 된다.

 

1) 형상의 기원 : 유형적인 신격(神格)에 대한 인간의 욕구. 우상을 처음으로 창시(創始)한 자들은 죽은 자를 존경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들을 미신적으로 예배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교만과 무모한 것으로 꽉 차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감히 신을 상상해 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완만하게 어리석음과 무지에 완전히 젖어버리기 때문에, 그것은 공허하고 허망한 환영(幻影)을 하나님으로 상상한다.

세계가 창조된 이래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서, 인간은 이 맹목적인 욕망에 따라 볼 수 있는 상징물들을 만들어 세우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믿어 왔다.

 

2) 형상물의 사용은 마침내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다.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기 전에는(32:4),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손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무분별하지 않았다(26:13).

그러나 이것들이 그들을 바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신이라고 아론이 말하자, 그들은 이에 뻔뻔스럽게 동의하여(32:4,8),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금송아지에서 볼 수만 있다면, 해방자(解放者)이신 하나님을 그대로 존속시키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들은 형상 속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생각하게 되면 하물며 유대인들도 그랬는데 이방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형상으로 예배함은 물론 점점 그러한 행동에 무감각해지게 되어 거기에 무슨 신적(神的)인 것이 있는 것처럼 완전히 감탄하게 됨은 물론 그것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3)교회에서의 형상물(形像物) 예배대하여

형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놓는 경우 결국은 형상물이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거스틴도 이점에 대하여, “우상(형상)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치고, 그 우상이 자기의 기도와 예배를 받아 주리라는 생각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리라는 희망을 품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그들은 형상물을 결코 신이 아니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예언자들은 그들이 목석(木石)으로 더불어 간음한다고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2:27; 6:4f.; 40:19-20; 2:18-19; 32:37).

칼빈은 이러한 일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지기를 원하는 자들에 의해서 매일같이 행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나무와 돌로 만들어 놓고 육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4) 교황주의자들의 어리석은 회피 교황주의자들은 교묘하게 구별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학교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개혁신학교  |  대표자 : 남보석  |  TEL : 031-741-0175 / 070-8865-9888  |  FAX : 031-742-0175
주소 : 서울시 송파구 송이로 37가길 25로  |  사업자등록번호 : 107-89-80668
Copyright © 개혁신학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