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5대교리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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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1:58 조회6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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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려는 사람과 같다.
어떤 때는 미끌어져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 얼굴은 언제나 정상을 처다보고 있다. 또 C.H(stong) 스펄죤은 "믿음이 있는 자는 큰 배를 타고 있는 자와 같을 것이다. 곧 갑판위에서 딩구는 일이 있어도, 그러나 바다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참 그리스도의 신자로 보이는 자가 최후적으로 배교로 떨어져버린 경우의 취급도 절대로 해석이 곤란한 것은 아니다.
성경도 우리들의 경험도, 친구에 대한 우리들의 판단은, 곧잘 잘못되는 것을 가르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참 크리스찬인가? 아닌가를 확실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적인 고백이 반드시 영혼이 구원되었다는 보증은 못된다. 예수는 제자를 훈계하여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이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장)라고 말씀하시고 바울은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하나니 (고후11:13) 라고 주의를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가 아무리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일찌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을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계2:9)라고 말씀하며 더러운 집단임을 아시는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라고 말하고 있다.
타락해서 영원히 떠나가는 모든 자는 바로 이와 같은 따위의 것들이다. 이와 같이 신앙 고백으로 부터 떨어지는 자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지는 자는 없는 것이다.
단순히 교회의 신도가 물론 참 그리스도 신자의 보증은 안된다. 때로는 어떤 목적으로 외면적으로 복음의 고백을 하는 자도 있다. 그들은 잠시 동안은 외면적인 도덕생활을 강요당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친하게 사귀는 일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그들의 심정의 참 동기를 본다면 그들이 과거에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들 모두는 염소이지 양은 아니며, 또 사나운 이리이며 순한 양은 아니며 베드로는 그들에 관해서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하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라든지 하는 속담대로이다. (벧후2:22)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과거에 선택된 백성에 속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자유의지의 교리와 은혜로 부터의 타락의 교리와를 지니는 철저한 알미니안 주의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결코 그의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지 못한다. 진실로 현재의 구원의 확신은 가질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구원에 관해서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데 불과하다. 만일 알미니안 주의가 진리라면 그리스도의 신자들의 장래는 그의 피조물적인 의지가 바른 길을 계속 선택한다는 공산위에 서 있기 때문에 지극히 불안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알미니안 주의의 구원의 보증은 전능하여 불변한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아니하고 약하고 죄 많은 인간의 손에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알미니안 주의자의 논리에는 그리스도의 신자가 되도록이면 빨리 세상을 떠나야 되며 자기에게 약속되어 있는 무한 가치 있는 후사를 확보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해 버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그리스도의 신자가 이 세상에 머물러 이 세상의 얼마 안 되는 생활을 위해서 이 영원한 구원을 손해 시킬 가치가 있을 것인가?
영적인 사실에 관해서 의심의 상태는 불행한 상태다. 이와 같은 교리는 우리들을 위협하고 영원토록 거기서 피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내가 목숨을 의탁하는 이 배가 항해에 견디고 뱃길을 떠나면 반드시 안전하게 목적의 항구에 도착하는 것을 알고 싶은 것이다.
알미니안 주의자는 성경 안에서 믿음이 있는 자가 구극의 타락의 가능성을 포함한다고 논증하는 바, 배교, 타락에 대한 경고의 말을 열거한다. 하나님의 타락의 공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은 그의 타락을 인정하다는 목적을 지니기 때문은 아니다.
이와 같은 공포는 하나님이 그를 타락에서 지키려고 하시기 위한 수단이다. 이와 같은 경고는 믿음을 갖는 자에게 있어서 보다 더 큰 신앙과 기도를 하라는 격려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의 거룩의 결여와 하나님의 의존을 확신케 한다.
그리고 그들은 불신자의 제한으로 도움이 되고 또 그들의 변명의 여지를 없게 하는 것이다.
5) 불가항력적 은혜
5. Irresistible grace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불가항력적 은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으로 예정된 모든 사람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만을 자기가 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인정한 때에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실제로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총과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신다. 또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도록 영적으로 또한 구속적으로 계몽하신다.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게 하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다. 선을 원하게 하는 절대적인 전능으로써 그들의 뜻을 새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실제로 가까이 나오게 하신다.
이때에 그들은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며 은총으로써 그것은 원하도록 변화를 받는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그 자연의 상태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그 자신의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깨끗해질 수가 없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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