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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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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41 조회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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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위를 비교할 때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신격의 근원이신 성부에게 한정 된다면서 위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의 위격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로 인하여 그의 위엄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인격으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기에게도 속하는 그 신격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명칭 아래 두셨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말할 때, 칼빈은 이는 영원한 본질과 관련하여 자신이 성부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제2차적인 신격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어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격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성부에게만 한정시키고 성자에게 이를 배제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

특히,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바로 참되시며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였다(1:1; 요일 5:20)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7) 반대자들은 이레니우스를 잘못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신격에 훼손을 가하려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유일하시며 영원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레니우스(Irenaeus)의 말을 자주 그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레니우스의 이 말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이외에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과 다른 신을 상상하는 것은 사악한 행위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성경에서 절대적으로 또는 아무 구별 없이 하나님이라 불리신 분은 참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야말로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라 불리셨다”.

그리스도는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인 까닭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12)라고 그의 저서(Against Heresies )에서 설명하고 있다.

 

8) 터툴리안을 인용한 것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되 그의 말씀은 분배 혹은 섭리에 의해 존재한다.”는 터툴리안(Tertullian)의 말을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논거로 비판자들이 삼고 있지만, 이 말은 하나님은 본체(substance)의 단일성에 있어서 유일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단일성은 분배의 신비에 의해 삼위로 배열된다는 의미라고 본다.

따라서 칼빈은 삼위가 존재하되 그것은 상태(state)에 있어서가 아니라 품위(degree)에 있어서 그러하고, 본체(substance)에 있어서가 아니라 형식(form)에 있어서 그러하고, 권능(power)에 있어서가 아니라 질서(order)에 있어서 그러하다면서, 터툴리안 역시 성자를 성부 다음 가는 분으로 지적하지만 이는 위를 구별할 때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라 보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9) 교회의 인정을 받은 학자들은 모두가 삼위일체 교리를 확증하였다. 고대 교회의 저서들을 열심히 비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삼위일체의 교리가 정당함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그가 논의 중 언급하였던 이레니우스(Irenaeus)나 져스틴(Justin), 힐라리(Hilary) 그리고 어거스틴(Augustine)의 견해를 들어 간단히 살펴 본 후에, 최종적으로 하나님께는 영원부터 삼위가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은 본질상 유일하시며 단일하신 한 분 이외에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칼빈에 따르면 아리우스나 사벨리우스파와 같은 부류들에 의하여 삼위일체라는 말은 사용하더라도 사실상 성자의 신성을 부정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기독교강요 제

특히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여호와

(야웨 YHWH, Yahweh)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말씀(logos)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이시며, 성령 역시 하나님의 영으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에 따르면 통상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성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며, 성부와 성자 및 성령이라는 삼위로 구별할 때는 반드시 위격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들 삼위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이들 간의 구별이 아닌 분리는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하여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 이하에서 언급하였는데, 칼빈은 이 문제에 대하여 구별은 가능하지만, 분리는 할 수 없다고 보면서, 위격상의 구별은 질서와 경륜에 기초한 것이라 본다.

, 칼빈은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면 성부와 더불어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없을 것이며(13:7),

성부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데서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고는 성부는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며(1:3; 11:3),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나(15:26) 성부가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데서(14:16) 성령은 또한 성부와 당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부는 일의 시초(始初)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counsel)이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이시라면, 성령님께서는 그와 같은 모든 행동의 능력과 효력이 돌려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함으로써 경륜(economic)에 따라 구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간의 위상에 차이는 있는 것일까요? 칼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관계 개념 속에서 볼 때는 아버지로부터 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이라는 순서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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