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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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15:54 조회3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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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들을 제 2의 축복으로 보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현안의 문제점이다.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신자가 제 2의 축복인 성령세례42)를 받기 전에는 성령의 선물(The Gift of Holy Spirit)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관점은 비판되어야 마땅한데, Merill Unger는 지적하기를,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를 구원 이후의 경험과 동일시 할 뿐 아니라 이것을 성령의 선물(The Gift of Holy Spirit)과 동일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은 구원 이후의 계속되는 어떤 경험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구원 그 자체가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Unger는 주장하기를 모든 신자들은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고 따라서 모든 신자는 구원의 결과로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Holy Spirit)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43) Kenneth Kinghorn은 이것을 구별하여 말하기를 신자들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회심하는 순간에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는 성령의 선물(The Gift of Holy Spirit)을 값없이 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에게 다양한 형태의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Holy Spirit)을 나누어주심으로 교회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수종 들게 하신다고 하였다.44) 하나님의 언약이신 축복은 교회 안의 다양하고 풍성한 성령의 은사들로 실현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축복하신다. 이런 관점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는 성령의 세례라 불리우는 초자연적인 경험과 구원의 연결성을 강조함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로의 회심을 통한 구원의 도리를 등한히 여길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점에서 제2의 축복이라는 주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중심성과 충족성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는 Thomas A. Smail의 경고는 매우 의미있다.45)
특별히 오순절주의자들의 기사와 이적에 관한 은사 중에 방언과 예언에 관한 강조는 대단히 주의를 요한다. 그들은 방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은사로써 방언을 말하지 않는다면 아직 제2의 축복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Kenneth Birch는 이와 같은 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에 대한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 오는(From God to Men) 구원받은 표증"이라는 견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지적하며,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과 또 연계되는 사건 속에서 방언의 목적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확증(Sign)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 드려지는(From Men to God) 찬양과 경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Birch는 방언의 내용 역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도행전 2장 11절은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방에서 몰려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제자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고 한다. 그들이 방언으로 들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특별한 설교(예언?)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었고, 그 뒤에 이어진 베드로의 설교(방언이 아님)를 통해 삼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Birch의 이와같은 견해는 전통적으로 방언을 통역이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예언과 동일하기 때문에 계시적 성격이 있다고 보고 이와같은 방언의 계시적 성격 때문에 계시의 종결과 더불어 방언도 종결되었다고 보는 보수주의의 견해와 상충되나, 방언이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보는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를 새롭게 반성하여 돌아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공한다.46) 결국 은사의 목적이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의 지체로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을 위한 사람의 봉사라는 관점으로 전환되어야(Paradigm Shift)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이적의 은사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섬기는 은사들을 당신의 뜻을 따라서 특별한 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신자들에게 허락하시고 그들의 은사를 통한 봉사로 교회를 건실히 세워 나가시며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도록 하신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설교기능을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으로 보아서 목회자의 말씀사역을 가장 중요한 목회사역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오순절주의자들은 예언의 은사를 좁은 의미에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아 일상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목회사역의 목회자의 설교 중심적인 관점에서 탈피해 평신도들도 목회사역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예언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보조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으며, 교회의 지도자들의 권위 아래에 있다.47) 최근에 한국교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빈야드운동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지식의 말은 일반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로 이해하는 것인데 이 예언의 은사는 기록된 성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정경이 완결된 후에는 성경의 말씀에 버금가는 계시의 은사가 있을 수 없으므로 예언이라는 표현보다는 지식의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들이 말하는 지식의 말은 신자들이 서로 모여서 기도하거나 교제할 때 혹은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예언의 내용은 지금까지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환경과 사실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Wayne Grudem이나 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Jack Deere 같은 이도 "하나님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 말을 크리스챤에게 인도하기 위해 그에게 줄 수 있다"고 이와 같은 견해를 동조한다.48)
물론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위하여 성경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예언의 말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언의 속성이 단순히 성령과 더불어가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성령과 더불어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성경과 상관없음이 아니라 성경의 지시를 따라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빈야드의 느슨한 예언관은 본문과 상황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상황을 위해 본문을 이데올로기화할 수 있는 위험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육신적인 재능, 성령의 은사들 그리고 성령의 열매
C. Peter Wagner는 성령의 은사를 "하나님의 은헤로 말미암아 지체안에서 사용되기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속성"이라고 정의하면서 이와같은 은사들은 성령님과 관계없이 자연적으로 자신이 소유하는(Natural Talent: Possession) 육신적인 재능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성령의 은사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Gifts)으로서 때로 하나님께서 육신적인 재능을 사용하시거나 변화시키어서 특별한 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성령의 은사로 사용되도록 하시므로 육신적 재능과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구체화된 능력(Charismata)을 구성하고 있는 재능 자체 보다는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49) James I. Packer는 오늘날 교회안에서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은사를 가졌다고 단정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바로 지적하였다. Charisma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규정될 수 없고 그 일을 통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덕을 세우는 상대적인 요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사용하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많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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