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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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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2:28 조회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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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성경해석학의 역사적 검토

 

성경해석학이라는 학문이 학문으로서 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성경해석이 초대교부 시대부터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성경해석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학파가 처음으로 생긴 때는 AD 180년대의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d. 초대교회와 교부시대

 

5)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n School)

 

a. 필로(Philo of Alexandrian)

 

필로는 유태인으로서 일종의 신 플라톤 주의자였다. 필로의 주장 가운데 하나는 성경은 모든 문자의 배후에는 어떤 신비한 뜻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배후에 있는 것이 실체라고 하는 이원론적인 플라톤의 관념주의적인 영향이다.

필로는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이 같은 적용을 해서 겉으로 드러난 문자의 배후에는 신비한 어떤 뜻이 들어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또 필로는 문자의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을 안개처럼 가리우고 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성경해석자의 작업은 안개 같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 즉 문자적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그 배후에 있는 실체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b.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150 ? - ? 220 AD)

 

필로를 통해서 교부들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같은 학파에 속하는 교부 클레멘트는 필로의 영향으로 우화주의적(allegorical)해석의 교조가 되었다.

클레멘트 교부는 성경의 모든 부분은 구원의 진리를 숨기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모든 성경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보았다.

첫째는 역사적 의미로,

둘째는 교회적 의미로,

셋째는 예언적 의미로,

넷째는 철학적 의미로,

다섯째는 신비적 의미로 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의 모든 부분을 구원과 관련시켰다.

물론 성경의 중요한 핵심은 구속사이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부분이 반드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구속사관을 강조함으로써 성경의 모든 면을 억지로 구원의 교리에 합치되도록 영해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우리는 지금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c. 오리겐(origen, 185 ? - ?254 AD)

 

오리겐은 클레멘트의 제자로서 인간 구조의 삼분설인 영, , 몸을 근거로 성경의 모든 부분에도 세 가지의 뜻 즉, 영적인 뜻, 혼적인 뜻, 몸 적인 뜻이 있다고 하였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든지 문자적() 뜻이 있고, 도덕적 의미인 혼적인 뜻이 있고, 그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상한 성경해석은 영적인 해석이라고 하였다. 마치 희랍철학이 이원론에 근거해서 육체를 추하게 본 것처럼 오리겐 교부는 문자적 의미를 가장 열등하게 취급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는 것은 가장 열등한 성경해석이며 잘못된 것이고,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교회사에 있어서 우화 주의적 성경해석에 큰 영향을 삐치게 된 사람이 바로 오리겐 교부였다. 같은 무렵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대조를 이루는 또 하나의 학파가 생겨났다.

 

d. 안디옥 학파(antioch School)

 

* 제롬(Jerome)

 

안디옥 학파에 속한 유명한 교부로 제롬이 있다. 벌게이트(vulgate)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달리 문자적 의미를 중시했다.

성경번역학자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롬의 유명한 말이 있다. “소위, 깊게 해석하는 것이 문자적인 평이 한 해석을 배신할 수 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발언이다.

한국교회에 이따금씩 성경을 잘 쪼개는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신기하게 성경을 해석하면 그 사람 성경을 잘 쪼갠다고 한다. 그런데 쪼개서는 안 될 부분까지도 쪼개놓는 결과를 가끔씩 볼 수 있다.

 

e. 크리소스톰(Chrysostom)

 

성경 해석 사에 있어서 크리소스톰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위 문법적 · 역사적 성경해석의 원리(Grammatical - Historical Interpretation Principle)를 처음으로 제창했던 사람이다.

그는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잘 살펴 역사적 · 문법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성경해석의 바른 길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f. 중세기

 

* 대부분의 경향.

 

초대교부 시대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가 대결하면서 우화 주의적 해석과 역사적 · 문법적 해석이 공존했다. 그런데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성경해석의 경향은 대부분 우화 주의적 해석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신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증가하게 되었고, 따라서 성경은 성령의 특별한 감동을 받은 사람이나 사제(신부)들이나 해석할 수 있고, 평신도들은 그런 오묘하고 신비로운 뜻을 깨달아 알 수 없다는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이러한 경향과 함께 성경해석을 교권에 대한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고 사제들만이 해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평신도는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되고 성경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중세기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g. 소수의 예외.

 

항상 소수의 예외는 있다. 중세기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예를 들면 파리의 빅토 수도원 학파의 앤드루(Andrew)라는 사람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본래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를 찾으려 했다.

이것을 중시하지 않으면 성경을 건전하게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중세기 성경해석의 암흑기에도 성경을 바르게 보려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문자의 뜻을 중시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에 상당히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만은 문법적 · 역사적인 해석원리를 중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중세기의 대체적 경향은 우화주의적 성경해석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h. 근세 이후

 

근세 이후, 세계는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문예부흥 시대에 중요한 것은 고전연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고전연구가 성경해석에 미친 영향은 성경을 하나의 책으로서 발견한 일이었다.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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