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3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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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44 조회6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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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순서는 질서의 문제일 뿐이며 성자와 성령도 성부와 같이 비 발생 적일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말씀이 성부에게 예속된다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봄으로써 삼위 간에는 완전 동등 설을 주장하였다.
특히 칼빈이 종속 설을 비판한 것은, 이 종속 설에 따를 경우 무엇보다 기독교강요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처럼 성자의 신성이 훼손될 경우 성경상의 중대한 오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곳곳에서 성자와 성령 역시 자존하시는 하나님(autotheos)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칼빈은 이 말로 삼위일체론의 강의를 끝내고자 한다. “우리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이 하나님의 명칭은 유일하시며 단일하신 본질로 이해된다는 것이며, 이 본질 안에는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특수화함이 없이 언급할 때, 이 명칭은 성부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도 지칭한다.” “삼위는 모두 하나님의 한 본질로 영원히 존재한다.”(all three divine persons eternally subsist in the one being(or essence) of God)(지난번까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 중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기독교강요 제14장, 그리고 제16장 내지 18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특히 칼빈은 창조와 섭리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고 보아, 제14장의 창조에 이어 제16장부터 섭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창조와 섭리 사이에는 제15장의 창조된 인간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논의의 편의상 인간론은 결국 타락과 죄의 비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15장 부분은 기독교강요 제2부 제1장 내지 4장의 인간의 타락과 죄론(비극)에서 같이 다루기로 하겠다.
그리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선택과 예정, 그리고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칼빈은 다소 의도적으로 선택과 예정을 제3부 제21장 내지 제24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기술순서에 따라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과 예정을 나중에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16장 우주와 만물 창조에 있어서까지 성경은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명백한 특징들을 가지고 구별한다.
1. 세계와 인간의 창조의 관하여
1) 인간의 사색으로써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참 뜻을 살필 수도 없고 또 살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가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좀 더 상세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창조의 역사가 명백해지며, 교회의 신앙이 이것에 근거하여 모세가 우주의 형성자요 창시자로 표현한 분 이외의 다른 하나님을 찾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 연대에 대하여 6천년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비판자들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기간을 무익하게 지내시며 천지를 건설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 반문에 대하여 이 물음 그 자체는 사리에 맞지 않거니와 이것을 캐보려고 해도 사실상 중도에 포기하고 말 것이 명약관화하다면서, 우리의 신앙의 겸손을 시험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추어 두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 못된다고 말한다.
2) 6일간의 사역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 준다.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6일 동안 이루어졌으며, 제7일의성별(聖別)이 초대하고 있는 안식을 배워 환영하기 전에는 그와 같은 과정은 마치 하나님의 능력과 무관한 것처럼 불평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에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신 후에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사물의 순서에서 인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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