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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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9:26 조회6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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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형상이요 그리스도의 영성인 것이다.
10) 마지막 글
최종호 교수(부산신대)는 [영성의 성령론적 이해]라는 논문에서, "세상의 현실 속에 있는 나는 자주 두 개의 '나'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본래의 나(self)'와 '이기적인 나(ego)'가 그것이다. 시기, 미움, 험담, 분열 등 악독은 어두운 육적 열매로 '본래의 나'속에 있지 않고 그것은 자기만을 고집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표출되어진 '이기적인 나'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는 '나'와 하나님 밖에 거하는 '나' 사이에 새로운 투쟁 거리로 들어간다.
두 개의 나, self와 ego에 대한 구별은 '창조된 나'와 '타락된 나'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인간 본래의 나(self)에 거하신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나(ego)가 확대되어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靈)과 형상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다.
성경은 이와 같은 ego의 확대를 타락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ego로 둘러싸고 있는 인간의 실존 속에 구체적으로 찾아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논술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새 생명'이 되심을 친히 보이셨고 후에는 성령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성령이 거하지 않는 인간의 영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참된 영성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 즉 하나님의 삶을 성령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령은 인간의 영성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묶인 자들과 눈 먼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을 찾아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게 하신다.(사61:1,눅4:18) 그러므로 영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엄두섭 목사님은 "참다운 영성은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정의를 내리시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에게 임하며 그 영을 받은 자들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특히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의 사람을 찾아 성령은 사역을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있는 곳엔 영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영성과 성령과 삶은 언제나 하나이다.
우리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어 이해를 한다.
ㄱ) 자연인
무신론자, 무속인, 타 종교인을 총칭해서 자연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생활의 경험과 양심에 따라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신앙적 표현을 한다.
ㄴ) 육적 그리스도인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수도 믿는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동의(同意)하는 것이지 결코 믿음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의 신앙은 언제나 인본주의(人本主義)이다.
늘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 다만 습관적인 예배에 참여하고 필요시에 기복 적인 기도를 할 뿐이다.
ㄷ) 영적 그리스도인
이들은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구원의 은총 앞에 감사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본(本) 받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라면 자신의 명예와 재산과 신분도 포기하면서 순종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와 계획과 노력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성령의 임재와 도우심을 겸허히 기다리는 사람이며 이웃을 자주 돌아보는 일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는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열매는 뿌리가 결정을 해준다. 나는 자연인의 뿌리인가, 육(肉)의 뿌리인가, 아니면 영(靈)의 뿌리인가?
그리고 각 열매는 고유의 냄새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냄새는 역시 예수의 향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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