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6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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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9:38 조회3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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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성도 안에 오셔서 속사람을 이끄심으로 구속의 역사를 믿게 하시는 역사로 이루어 놓으신 속죄의 의를 말하는 것이다.
즉 구속을 믿는 믿음의 의를 말한다.
“휘장”
성전에 휘장을 의미하고 주님의 영이 임재 하심으로 우리 안에 생기는 아름다운 것들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성령의 열매가 내 안에 맺히는 것이다.(갈라디아서5:22~23) 주님의 생각으로 내 안에 가득 차는 것을 말한다.
또한 주님의 신령한 요소들로 가득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휘장과 같이 아름다운 영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의 속사람이다.
(빌립보서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 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 하였구나”
여기서 “쬐어서” 라고 하는 의미는 태운다는 뜻인데 이는 성취된 행동을 나타내는 단어다.
침궁 안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타락한 모습이 검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따라서 여인은 또 다른 성도들이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체험하고 거듭남으로 우리의 모습이 죄로 인해 검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나 주님 외에는 나의 검은 죄의 모습을 다른 성도들이 보지 않기를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라고 있는 것이다.
주님도 남의 티를 보지 말라 하신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단점을 자신 있게 말한다.
“죄인 중에 괴수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요, 빚진 자로다”
(딤전1:15)라고 말이다.
성도들도 이런 간증을 용기 있게 해 보라
“흘겨보지 말 것은”
이 내용의 의미는 예수 안에 살고 있지만, 성숙하지 못하여 실수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자주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본능적으로 이런 모습들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와 같이 성숙함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성도는 자기 생활을 다른 성도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이들에게는 성령을 통한 훈련과 충분한 것을 영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반면에 성령에 의해 깊은 단계의 훈련을 통과한 성도는 자기들의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보이고자 하니 기이한 일이다.
여인이 왕 앞에서 밝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듯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때이다.
그러므로 여인은 일광이 나를 태운다. 라고 고백한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와 고난이 나의 육신을 약하게 하고, 육신의 생활은 아예 무가치하게 되고,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임을 알게 하였고 한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나의 아버지에 아들들이 아니고 나의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어머니란 (갈라디아4:26~28)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초로 둔 약속의 원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러므로 내 어미 아들들이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약속과 은혜의 원리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
이들은 교리적인 문제의 중심을 두고 있고 외적인 예배 의식에 관심이 많다.
내적인 깊이와 영적 체험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바리새인, 사두게인, 대제사장들처럼 외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침 궁에서 얻은 성숙된 훈련과 헌신과 봉사를 체험함으로 인해 큰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외적인 예배 의식과 규례에 만 취중하고 모세의 율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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