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9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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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6:09 조회6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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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치유, 나아가서는 영혼 구원을 이 종유를 통하여 약속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 주님과 사도들의 기적적인 치유들은 대체로 계시의 시대인 사도시대의 일들이요, 영속적으로 중요한 것은 ‘복음의 설교’라고 말한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계층 질서 적 7성직을 성례라고 부른다. 즉 문지기, 성경 읽는 사람, 귀신 쫓는 사람, 복사(服事, 미사 때 사제를 돕는 사람), 부 집사, 집사 및 사제가 그것인데 이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령의 일곱 가지 능력에 상응한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저 7성례를 모두 시행하셨기 때문에 이 7교직은 각각 그리스도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팔고 사는 사람을 내어 쫓았기 때문에 문지기요, 또 “나는 문이라” 하셨기 때문에 문지기라고 저들은 말한다.
또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셨기 때문에 그는 성경 읽는 사람이었고, 벙어리 귀신들린 자에게서 구신을 내어 쫓았으니 그는 귀신을 내어 쫓는 사람이라고 저들은 고집한다.
또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걷지 않을 것이다”(요8:12)에서 복사(服事)가 되었고, 아마포를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기 때문에 부(副)집사였고, 만찬 때에 몸과 피를 분배하셨기 때문에 집사였다고 저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희생되셨기 때문에 제사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 일곱 가지 성직을 전적으로 거부하였고 그것들이 결코 성례화 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끝으로 결혼은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되었으나 그것은 결코 성례가 아니다. 그레고리 7세(1073-1085)가 이것을 성례화하기 시작하였다.
저들의 주장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영적인 연합의 비유 혹은 상징이 결혼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례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성경에 있는 많은 비유나 상징들이 성례 화 되어야 할 것이다.
결혼은 결코 성례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묘사하는 여러 비유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21. 국가와 정부(교회와의 관계)
우리는 이미 기독교강요 제3권 제19장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그리스도인이 이제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율법을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다는 뜻에서의 자유를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복음에 의해 자유롭게 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순종해야 하고 양심의 소리에 순응해야 할 자유를 가질진대 국가 공동체의 질서가 양심의 소리 위에 세워져 있는 한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뜻에 속하는 것인 한 이 국가 영역에서 순종의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양심에 따른 국가 질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형벌의 두려움 때문에서 뿐만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 국가의 공직자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두 왕국을 묘사한다. “인간에게는 이중적인 정부가 있는데 하나는 영적인 정부로서 양심이 경건의 교육을 받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육을 받는 영역이요,
다른 하나는 정치적 정부로서 양심이 인간들 사이에서 유지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교육 받는 영역이다. 그래서 전자는 내적인 정신을 규제하며 후자는 외적인 행동을 규제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자를 영적인 왕국이라 부르고 후자를 정치적 왕국이라 부른다.”
칼빈에게 있어서 국가의 본래적 존재 이유는 일차적으로 ‘영적인 정부’ 내지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함이다.
그러나 중세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국가가 교회에 예속하는 식이 아니요 19세기 국가주의와 히틀러의 경우처럼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는 경우도 아니다. 이들은 한 왕국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빵과 물과 태양과 공기가 필요하듯이 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각 개인의 재산 소유의 권리를 갖도록 하며 인간 상호간에 사귐을 갖게 하고 덕망과 근엄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게 한다. 즉 인간성의 확립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 중 둘째 돌판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첫째 돌판의 것도 수행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우상숭배나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참람함을 막아야 하고 종교를 파괴하는 공공연한 범법 행위를 막아야 하며 이런 독소가 사회에 퍼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상의 두 왕국 사상은 루터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더욱이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의 존재 근거가 하나님께 있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그리스도의 왕국’에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 18세기와 19세기의 국가주의는 신적 기원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리스도의 왕국’과의 유기적 관계가 단절되어 버렸다.
칼빈은 공직자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요 모든 국가의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상급을 주고 악행을 범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품행이방정해야 하며 지식을 겸비하고 죄가 없으며 자기제어를 잘해야 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와 선과 자비와 의를 사람들에게 반사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는 악한 무리를 제압하기 위하여 강제력까지 동원할 수 있고 ‘공평’의 정신에 근거하는 한 전쟁도 감행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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