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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8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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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39 조회6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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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주시는 의가 아니면 믿음에서 오는 의라고 할 수 없다고(4:2) 주장하는데, 이 말에 대하여 그들은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칼빈은 롬 1:17, 3:21, 3:24, 3:28을 통해서 이를 분명히 하면서, 이에 반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3:20)이므로 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외 참고로 롬 4:15, 4:4-5, 3:27, 3:21-22).

 

8) “율법의 행위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 부분을 강조하는 무리들에 대하여, 칼빈은 무지한 자들이 트집을 잡는 것이라 말한다.

특히 이들 중에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5:6) 의롭게 한다는 사도의 고백을 따라,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므로 의는 사랑(caritas)에 의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의를 얻게 하는 믿음의 힘이 사랑을 행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믿음이 의를 얻게 하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이고 그 외의 방법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4:4)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입은 믿음의 의는 당연히 은혜를 베풀어야 할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의를 부여하는 곳에서만 인정된다.

 

4. 다만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죄가 용서된다.

 

1) 칭의와 화해와 죄의 용서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이 화해는 곧 죄의 용서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다시 받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원수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그 오점을 씻길 때이므로, 이런 점에서 는 한 마디로 죄의 용서라고 부를 수 있다.

 

2) 칭의와 죄의 용서 사이에 있는 긴밀한 관계를 성경에 의하여 증명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사도는 의와 화해를 서로 구별하지 않으며, 죄의 용서와 의를 연결하여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근거로 얻는 의는 값없이 주시는 것이라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의 의는 완전히 덕성에 있지 않고 죄의 용서에 있다고 했으며, 베르나르드(Bernard)죄를 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의다.

그러나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스도는 죄의 사면에 있어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의 자비로 용서를 받는 자들만이 의롭다고 말한 데서도 죄의 용서와 의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3) 우리 자신이 의로운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것이다. 사도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고 했는데,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의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의를 소유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사람이 자신 만으로서는 의롭지 않으나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전가되며 전달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과 같다.

육신의 연약은 행위를 방해하나 믿음의 광채는 죄의 용서를 얻게 하며 행위의 과오를 덮는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취로 좋은 냄새를 풍기며, 우리의 악을 그의 완전성으로 덮고 묻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칭의의 교훈을 깊이 확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대를 우러러보며 생각해야 한다.

 

5. 하나님의 존엄성과 완전성에 비추어 칭의를 논함

 

1)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도 의롭지 않다.

칭의를 말할 때는 인간 법정의 공의가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 법정의 공의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해서 모든 부분이 완전무결한 것, 아무 부패나 오명이 없는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고한 선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능력과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앞에서, 너무나 불완전하고 미련한 우리 인생이 어찌 담대히 설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인생에 대하여,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러 죽을 자이겠느냐 조석 사이에 멸한바 되며”(4:17-20),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15:115-16)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쳐 보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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