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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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9 17:32 조회5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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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사람들은 서로 유사점이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바울이 칭송한 확신 즉 높은 소리로 아바 아버지라고(갈 4:6; 롬 8:15) 부르는 확신이 풍성하게 자란다. 이에 반하여 버림받은 사람들은 은혜에 대한 인식이 언제나 혼돈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그것은 견고한 실체보다는 그림자를 잡을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칼빈에 의하면 믿음이란 우리가 스스로 믿는 의지적인 발동 그 이전에 하나님의 택함과 버림이 전제가 된다고 본 것이다.
즉, 믿음도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근거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선택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산 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해 주시지만(마 24:13), 버림받은 사람은 그의 은혜에 대한 일시적인 인식은 있을지 몰라도 후에는 그것이 사라지고 만다고 말한다.
5)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
칼빈은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논함에 있어 위에서 언급한 선택의 교리를 근거로 내세운다.
따라서 첫 사람의 반역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그의 마음과 영혼에서 말살된 것같이 하나님께서 사악한 사람들을 은총의 빛으로 비추시다가 후에 빛이 소멸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을 아는 지식으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감동시키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식이 마음에 깊이 스며들게 하시는 것은 무엇으로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선택된 사람들의 믿음이 아무리 부족하고 약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들이 양자가 되었다고 하는 확고한 보증과 날인을 해주심으로써(엡 1:14; 고후 1:22) 그가 새겨두신 표징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결코 말소되지 않지만, 사악한 사람들 위에 비치는 빛은 후에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라 본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씨에 대해서는 선택된 사람들의 경우와 달라서 성령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며 그 씨를 영원히 썩지 않게 만들지는 않으신다고 한다.
6) “믿음”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딤전 3:9),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 4:6),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하라”(딛 2:2)는 등의 성경구절에서 보면 “믿음”이라는 말은 많은 경우 경건에 대한 건전한 교훈만을 의미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중풍병자를 고침 받게 하기 위하여 지붕을 뜯고 달아 내린 자들의 믿음(마 9:2), 백부장의 믿음(마 8:10)과 같이 특수한 대상에 국한시킬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이란 결국 불신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칼빈은 믿음의 성격과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기도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며, 영원한 구원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한다.”
9. 제 7절에 있는 믿음의 정의에 내포된 것을 자세히 검토함 :
지식의 요소
칼빈의 믿음에 대한 정의 : “믿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또 확실하게 아는 지식이며,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신 약속의 신실성을 근거로 삼은 것이며,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며 우리의 마음에 인친 바다.”
1) 고상한 지식으로서의 믿음
칼빈은 믿음에 대한 정의와 그 정의에 따르는 세부적인 개념 분석을 함에 있어, 먼저 믿음을 지식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는 보통 우리가 인간의 감각적인 지각으로 아는 사물들에 관해서 말하는 지식이나 이해와는 다르다고 한다.
믿음은 감각을 훨씬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에 도달하려면 사람의 마음은 그 자체를 초월해야 한다. 마음은 믿음에 도달한 때라도 그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칼빈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그 신념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인 것을 자체의 능력으로 지각한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고 봄으로써, 믿음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힘이라고 바울은 아름답게 묘사했다고 한다(엡 3:18-19).
따라서 칼빈에 의하면 믿음은 마음의 문제 또는 이해력의 문제를 초월한 지식의 문제로, 나아가 믿음의 지식은 이해가 아니고 확신(securitas)이라는 것이다.
2) 믿음은 확실성을 내포한다.
믿음은 완전하고 확정된 확실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불신앙이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실하시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생활에 부딪힐 때에는 모두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도, 그 자비가 자기들에게도 임할까 또는 자기들이 그 자비에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완전한 확신을 말하는데, 이러한 확신은 항상 신앙에 기인된다. 따라서 바울사도가 “우리가 그 안에서 그들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2)고 함으로써, 믿음에서 확신이 나오며, 이러한 확신에서 담력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담력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구원을 확신하는 데서만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확신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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