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5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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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21:38 조회4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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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기록 책에 새겨져있다.
우리의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영적 양상을 많이 소유하게 하신 것이 아니고 “엄위한” 성경의 특성을 지니게 함으로써 사랑하는 성도들을 원수가 두려워하도록 만드시기 위함이다.
진실로 오늘날 성도들은 안타깝다.
원수와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움과 엄위함을 상실한 것 같이 보인다.
과연 몇 사람이나 원수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는 지 자신을 돌아보라!
그리하면 회복의 기회가 찾아 올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주님이 주시는 연단을 잘 견디고 기도하고 봉사하므로 이런 축복이 주님의 다루심 안에서 우리에게 올 것이다.
5절 “네 눈이 나를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 리 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5절 상 반절 이 내용을 자세히 보면 주 예수님의 대한 여인의 사랑이 측량할 수 없는 정도가 됨을 말하고 있고 이런 강한 사랑함이 눈에 나타나 있음이 주님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가 된다.
이는 주님께서 여인의 사랑을 거부한다거나 외면하시는 뜻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눈의 시선을 돌리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생각들을 전하기 위하여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신 것일 것이다.
결국 여인을 충동질하므로 더 깊고 넓은 사랑의 체험과 고백을 더 얻고자 하심을 아는가?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님은 이러한 깊은 사랑을 얻자 하심을 아는가?
사랑의 마음은 얼굴과 눈에 나타난다.
행동에서도 말이다. 우리를 보시는 주님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정도가 커서 놀랄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5절 하 반절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여기에 머리털은 헌신을 한다.
레위기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나실 인은 머리에 임의로 삭도를 대지 못하게 함으로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게 하셨으며 삼손도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을 원하셨으나 그는 삭도를 하므로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힘을 빼앗기고 결국 회개하여 다시 힘을 회복 주님을 위해 희생으로 헌신을 드리고 생을 마감하였다.
여인도 주님을 위한 헌신의 각오와 정도가 깊어 세상의 어느 것도 여인의 사랑과 헌신을 막을 수 없는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참고 요절 고린도후서8:1-5)
6절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 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 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이 내용 속의 의미는 머리털은 헌신을 말하고 있지만 여인이 스스로 주님의 주시는 영적 레마와 같은 지식을 친히 주실 때 능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영적 수준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주님이 이 땅에 사역을 하실 때 제자들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므로 주님을 떠나 곁길로 갔던 사건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6:60)(요한복음6:66-69)실로 주님의 말씀을 소화해 내지 못한 다소 사람 사울은 얼마나 많은 주님의 일을 방해했으며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는가?
그러나 그가 주님의 특별 은총으로 눈이 열려 주님을 이해하고 깨닫는 소화의 능력을 얻어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하라.
여인이 지금 이런 성숙함에 이른 것이다.
7절 “너울 속에 너의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지금의 표현은 여인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묘사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인은 은밀히 행하는 면이 많았고 주님의 깊은 속에 숨겨진 뜻을 알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는가?
그럼 이 말씀을 자세히 정리하여 보겠다.
주님의 사랑이 결코 변하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여인은 많은 날 동안 어두움으로부터 시작되는 많은 실패와 쉬지 않는 시험과 유혹을 접할지라도 한 결 같이 여인을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언제라도 여인이 가지고 있는 주님을 향한 의심을 버리기를 원하고 계시며 여인의 영혼 속에 일어나는 모든 그릇된 환상을 버리게 하고 싶으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은 여인과의 관계를 절대로 변하지 않으심을 여인에게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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