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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6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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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9 조회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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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조심스럽게 구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5) 어떤 의미에서 회개는 용서의 선행 조건인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면 회개를 목표로 노력하며, 일생을 통해서 회개에 몸을 바치며, 끝까지 회개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에 하나님께서 용서를 약속하셨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고 한다(3:19).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이 우리의 회개가 근거가 되어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이러한 회개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생동안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이 육신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부패한 본성의 결점과 -아니 우리의 타고난 영혼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

따라서 육을 죽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며 훈련하여, 드디어 육을 완전히 죽이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주관하시게 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생이다.

그래서 칼빈은 자기를 싫어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유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기를 싫어하되 진창에 박혀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속히 가며 하나님을 사모하므로 그리스도의 생()과 사()에 접붙임을 받아 계속적인 회개에 유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칼빈은 죄를 진심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이 생각은 가장 순수한 것인 동시에 성경의 진리와 가장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5. 회개해도 소용없고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죄들

 

1) 회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회심을 원하신다고 언명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권고를 보내신다. 그러나 권고의 효과는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에 달렸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에서 구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으로 살리신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왕성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배교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허락되지 않는다.

, 어떤 죄에 대해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일이 없으나, 한 가지 죄만은 예외라 할 수 있다.

이 죄는 절망적인 광증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연약하게 때문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 사람이 마귀에 사로 잡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용서할 수 없는 죄

그렇다면 이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배교하는 죄의 구체적인 성격은 무엇일까? 어거스틴(Augustinus)용서를 믿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지만, 칼빈은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면서 하나님의 진리의 조명을 받아 무지를 주장할 수 없으면서도 악한 의도로 하나님의 진리에 항거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고 하여, “성령을 거스리는 죄또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라고 본다. 여기서 성령을 거스리는 모습은 칼빈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논박하며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확신하면서도 그 양심이 여전히 반대를 계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사역인 조명(照明)에 반항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성령을 거스려 훼방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3) “두 번째 회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의식적으로 또 고의로 배척한 자들에 대해서는 다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척한다는 뜻은 방탕, 무절제한 생활로 주의 말씀을 어긴다는 것이 아니고 주의 교훈 전체를 고의로 또 의식적으로 배척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특수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등지고 완전히 돌아서는 것, 이를테면 전인(全人)이 배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령의 조명을 의식적인 불 경건으로 없애고 하늘의 은사의 맛을 뱉아버리는 자들로, 성령에 의한 성화(聖化)에서 스스로 단절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유린하는 자들이다(6:4-5).

 

4)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은 회개할 수 없는 사림들이다.

위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은 주께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대해서 용서를 거부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령을 거스리는 훼방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으로 영원히 눈이 어두웠고, 그 결과로 회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형식적으로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라도 근본적인 회개는 불가능한 것이다.

 

5) 가짜 회개와 진짜 회개

회개에는 진짜 회개가 있고 또한 가짜 회개가 있는가? 칼빈은 에서의 회개(12:16-17; 27:28, 40)와 아합의 회개(왕상 21:27-29)를 예로 들면서 이들의 회개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셨다고 본다.

그래서 일시적인 삶의 회복은 허락하셨다.

그러나 이들이 구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용서할 수 없는 가증한 회개에 대해서도 일부 허락하셨는가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위선자들은 이와 같이 얼마 동안 용서를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항상 그들 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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