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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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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28 조회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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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시사(啓示史)에 유의하는 조직신학,

 

즉 계시의 역사적 점진 성을 인정하는 조직신학

 

무엇보다 먼저 성경 신학이 계시의 점진성과 유기적 성장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라는23 점을 유념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성경 신학에서 조직신학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을 수 있다.

특별 계시는 한 번에 완결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 점진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계시는 역사적으로 점진적인 방식으로 온다."24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가 성경의 자료를 가지고 신학을 할 때, 그 자료가 어느 계시의 시대에 주어진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신학 화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계시의 과정을 살피는 성경신학은, 머레이가 말하는 대로, 성경에 충실하고자 하는 조직신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indispensable) 것이다.25 본고에서는 세 가지 현저한 예를 들어서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신학적 진술을 하는 것이 계시의 점진성에 유의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예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것이다. 특별 계시가 종결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그 종결된 계시에 비추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적 하나님으로 계셨음을 말할 수 있다.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적 하나님이시므로 구약시대에도 분명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셨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에 대한 계시는 모든 계시가 그러하듯이 유기적 점진성을 가지고 주어진 것이다.

신약에 이르러 우리 주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자신이 하나님이기도 하심을 분명히 하시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성령의 동등하신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체험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할 수 있었고, 그것에 근거해서 후에 교부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신약의 명확한 계시가 주어진 이후의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다.26 구약의 초기에 주어진 하나님에 대한 계시에 아주 명백히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하나님이심에 대한 언급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계시의 점진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계시의 점진성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틸 교수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경이 사람에게 유기적으로 전달된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가 구약에서도 가르쳐졌으리라고, 그러나 신약에서 훨씬 더 분명하게 가르쳐졌으리라고 생각한다."27 그러므로 구약의 계시를 생각할 때에는 이런 점을 유의하면서 그 자료를 가지고 신학 화 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 1:26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1:26) 말씀하셨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명확히 계시하기 위해서 언급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우리'에 대해서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이들은28 마치 이 구절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지나치게 말한 듯이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몇몇 사람을 빼고는 그렇게 무리하게 주장한 이들은 사실 드물다.29 조심성 있는 신학자들은 그렇게 무리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이 말씀이 후대의 계시와 부조화되지 않는 것임을 지적했었다.

예를 들어서, 헤르만 바빙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계시의 일정한 진전이 있음이 아주 분명해진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 계시는 구약에서 시작한다. 분명히 우리는, 신적 계시의 역사적 성격을 무시하던 교부들이나 후기의 어떤 신학자들이 잘못 주장한 바와 같이, 구약에서 온전한 삼위일체 계시를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소시니안 신학자들, 알미니안 신학자들 그리고 후에 제믈러(J. S. Semler), 헤르더(J. G. Herder), 되덜라인(Doderlein), 브레트쉬나이더(K. G. Bretschneider), 호프만(J. C. K. von Hoffmann)이 구약에는 전혀 삼위일체 교리가 없다고 가르친 것도 잘못된 것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 사실에 관해 희미한 개념을 제공한다. 그것은 삼위일체에 관한 점진적으로 계시된 가르침 중의 첫 부분이다.30

 

또한 벌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1:2611:7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수로 언급하실 때에 하나님 안에 위격적 구별의 시사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훨씬 더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이 구절들도 삼위일체를 지시하지는 않고 위격의 복수성(a plurality of persons)만을 지시할 뿐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신약에 나타나고 있는 삼위일체에 대한 온전한 계시에 대한 분명한 선취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31

그러므로 벌코프는 그렇게 무리하게 삼위일체의 계시를 창세기 1:26 등에서 찾는 것은 아님을 볼 수 있다.

반틸도 이 구절은 언급하지 않고, 좀 더 분명하게 위격의 구별을 시사하는 구절들을 언급한 후에 "이 본문들은, 벌코프 교수가 말하듯이,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각 위에 대한 시사들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32

후크마도 "우리는 비록 여기서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복수로'('a plurality') 존재하고 계심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1:26]에서 단순히 힌트되고 있는 내용이 신약에서 삼위일체 교리로 더 발전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33

그는 이때 칼빈, 알더스, 루폴드 등의 주석가와 선배 조직신학자 벌코프의 논의에 근거해서 자신의 논의를 제시한다. 결국 후크마도 계시의 점진성을 생각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논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학자인 애즈버리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 빌 아놀드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창세기를 찾아보려고 해서는 안되지만, 이 구절[1:26]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창세기에서 시사와 암시로만 나타났던 것은 "때가 찰 때"(4:4)에 주어질 원숙한 계시를 기다렸어야 했던 것이다.34

이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는 카일과 월필드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35

또한 현대 학자들 가운데서 이를 하나님 안의 복수성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이들로 ClinesHasel을 들 수 있다.36 클라인즈는 이 구절의 "우리"2절에 언급된 창조에서 하나님의 동반자가 된 '하나님의 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이 구절에는 '신성 안에 이중성"(duality within the Godhead)이 언급된 것이라고 한다.37

그런가 하면 데렉 키드너는 이 복수형을 엘로힘의 복수형과 같이 "충만의 복수"(the plural of fullness)로 보면서 "구약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이 충만함은 요 14:23(그리고 14:17)에서의 '우리'(we and our)에서 삼위일체로 전개될 것이었다"고 말한다.38 그러므로 키드너도 계시의 점진성을 유의하면서 진술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주석의 서론에서 그가 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해 준다: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이라는 말이 오순절에서 온전히 계시되기를 기다리는 구약적 표현이었던 것과 같이, 주님 자신에 대한 칭호인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라는 용어도 선재하시는 성자이신 '아버지께서 ... 세상에 보내신 자'의 빛에서만 그 충분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39

빅토 해밀턴도 이 "우리"에 대한 여러 입장을 설명한 후에 결국은 계시의 점진성을 인정하는 이와 거의 비슷한 입장을 표한다.40

이렇게 조심스럽게 진술하지 않는 라이트너 같은 이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야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강한 증거가 발견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41

구약 전체에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들이 있으나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통일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볼 때,42 그에게도 계시의 점진성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점진성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고 분명하게 나타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의 조직신학이 성경 신학의 교훈을 충분히 받았는지의 여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예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가 성경에 매우 중요한 부분의 한 부분이므로, 구약의 많은 부분은 메시아에 대한 직접적 예언이거나, 간접적인 예언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어떤 것은 아주 명확하게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어서 분명히 그리스도 모형론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전한 모형론적 관계의 대표적인 경우는 구약의 희생 제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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