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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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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9 17:29 조회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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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성령과 불로세례를 주시며(3:16), 그의 복음을 믿는 신앙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 피조물이 되도록 하신다

(고후 5:17). 그리고 우리에게서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고, 깨끗하게 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성별하신다

(고전 3:16-17, 6:19; 고후 6:16; 2:21).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 없이는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믿음은 성령의 역사이다.”

 

5. 믿음 : 그 정의와 속성에 대한 설명

 

a. 믿음의 대상이신 그리스도

 

1) 믿음에 관한 정의를 분명히 하여야 믿음의 힘과 성질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정의하기 전에 칼빈은 지금까지 논의한 몇 가지를 회상토록 하였다.

,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율법으로 정하셨으나,

둘째로 우리는 이 율법은 완전무결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비참한 영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셋째로 이러한 비참한 영벌의 재난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 있는 해방의 수단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곧 구속자, 즉 해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2) 우리는 믿음의 진정한 성격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고 더욱 열성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칼빈은 이 믿음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서에 있는 이야기에 찬성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그보다 더 깊은 무엇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믿음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로(36:9) 가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아버지를 아시며, 그 다음에 그 분이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라 한다(10:22).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며, 그 지식이 우리에게 비친다고 하였다(고후 4:6).

 

3) 믿음이 한 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첨가해야 할 것이 바로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17:3)이다. 아버지께서는 계시하시려는 모든 것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시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은혜를 전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의 진정한 형상을 표현하셨다(1:3).

그래서 어거스틴(Augustinus)도 믿음의 목표를 논할 때 우리는 가려는 곳과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면서, “모든 과오에 대해서 가장 견고한 방비를 갖춘 길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신 그 분이라 한다.

즉 그는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가 되며, 사람으로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되신다. 목적지와 길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될 뿐이다고 하였다. 결국 이상을 종합해 보면,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벧전 1:21).

 

6. 신앙은 지식을 내포한다.

스콜라의 맹신이라는 사고는 참된 교리를 흐리게 한다.

 

1) 믿음의 근거는 지식이지 경건한 무지가 아니다.

믿음의 근거는 무지가 아니고 지식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하나님뿐 아니라 그의 뜻까지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교회가 명령하는 무엇이든지 진리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기 때문에 또는 묻고 알아내는 일을 교회에 일임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목이 성립되었기 때문에(고후 5:18-1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비로운 아버지시며 그리스도를 의와 성결과 생명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 때에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콜라(로마 가톨릭)는 모호한 정의로 믿음의 힘을 쇠약하게 만들며 거의 말살할 뿐 아니라 맹신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냈다.

 

2) 로마 교회의 맹신이라는 교리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요(17:3), 교회에 대한 존경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우리의 감정을 교회에 고분고분히 굴복시키기만 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진 무지를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믿음이다라는 조건만 붙으면, 무엇이든지 확실한 것으로 믿는, 그래서 자기들이 가진 오류를 진리인 것처럼 암흑을 광명인 것처럼 무지를 바른 지식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들은 결국 교회의 권위와 판단에 찬성하기만 하면 올바른 신자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믿음은 이해가 따른다.”는 한결같은 성경의 교훈을 모르는 소치라 칼빈은 비판한다.

 

3) 바른 믿음도 항상 오류와 불신앙에 둘러싸인다.

가장 완전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전진하는 것, 그리고 고요히 또 겸손하게 계속 노력하여 더욱 전진하는 것이다. 평소에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많아서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굴레로 우리를 일정한 한도 내에 제어하시며,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정하셔서(12:3), 가장 훌륭한 교사라도 항상 배우겠다는 태도를 가지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 때에 그들은 이와 같은 맹신의 분명한 본보기였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머뭇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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