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5대교리 2/1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1:55 조회65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 원칙을 따라서 모든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가증한 것, 더러운 것이고, 그의 마음을 매혹하는 것은 사악뿐이다.(욥기5:14~16 참조)
인간의 마음에 부패는 이와 같이 깊다. 그런고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생활의 개혁에 관한 오직 하나의 희망은 심정의 변화이며, 그 변화는 그 원하는 때와 곳에 따라서 활동하는 성령의 주권적 재 창조력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육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8장)는 것이며, 인간은 전연 무능력한 것이다.
이상 얘기한 것이 따라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구원은 절대적으로 또 오직 외골수로 은혜의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 주권적인 올바른 의지를 따라서 하나도 구하시지 않을 수도 소수를 구원하시는 것도, 혹은 다수를 구원하실 수도 또 모두를 구원하는 것도 자유이며, 그의 절대적인 완전성과 전연 모순이 안 된다.
2) 무조건적 선택
Two. Select unconditionally
선택의 교리는 예정, 또는 예지의 일반적 교리의 적용 즉, 죄인의 구원이란 문제에 관해서 생각된다.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에서는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과 천사들 중에 어떤 이는 영생으로 어떤 이는 영원한 죽음에 경륜되었다. (3:3) 하나님은 선택된 자를 영광에서 예정하는 것과 한 가지로 그의 의지가 영원하고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의해서 수단도 미리 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가 물어야 할 제 1의 문제는 이교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다 우선 에베소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 데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였으니(엡1:4~5)
또, 로마인의 편지 8:29~30절에는, 영원부터 영원에 걸친 속죄와 황금의 사슬이라 할 만한 가르침이 있다."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경은 {선택}을 개인의 공적과는 관계없이 그것을 과거에 있었던 일과 같이 또 전연 주권적인 것으로 해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성경에는 사람을 선택하는 자, 사람을 하나님께 접근 시키려는 자는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치고 있다.(시편65:4절)
알미니안 주의는 이 선택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인간의 손에 넘겨 줄려고 한다.
만일 선택이 사람의 신앙과 복음적 순종에 근거를 갖는다고 한다면 비꼬는 말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애견하시는 이로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자만을 조심스레 선택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구원은 전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는 거라고 언명하면서도 선택의 교리를 부정하는 자가 모순의 입장에 서게 되는 자이다. 구원은 인간의 소원이나, 노력에 의하는 것은 아니며,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에 의하는 것이다.(롬16장) 왜 그가 구원하시는가? 다만 그 이유는 만물을 자기 의지가 있는 곳을 따라 정하시는 하나님의 영향에 의해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이 영원, 무조건의 선택의 교리는 때로는 개혁주의 신앙의 심장이라 일컫는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미니안 주의는 제공된 은혜의 수용을 결정하는바 인간의 신앙과 순종하는 행위를 강조한다.
신비 중의 신비는 무한의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이 유죄한 인류의 전부를 구원에 선택하셨다는 사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예정은 예지위에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예지되는 것은 확정된 것이다.
그리고 예지된 자만이 한정된 자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 선택의 교리가 혹은 일반적으로 예정까지도 예지위에 세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구절로서 곧잘 지적을 받는 절이다.
로마서 8:29~30"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였으니 이는 그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 있는 "아는"이란 말은 곧 단지 있는 일을 인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에 쓰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이 "알려진" 자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특별함이며, 독특한 대상이란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유대인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암3:2)라고 있는 것과 같다. 만일 바울이 "미리 정한다," 라는 선택이 단순히 예지를 근거로 한다는 의미로 써먹는다면 그것은, 선택이 다만 하나님의 뜻에 의한다는 성경에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의 주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