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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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6 22:16 조회6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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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기적 영감 설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개인적인 지식이나 경험, 사상이나 개성 등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당신의 메시지를 기록하도록 성령으로 감동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그 기록자의 개인적인 지식, 경험, 사상, 개성 등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즐겨 쓰는 용어나 문체까지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때, 성경의 내용이 밝혀주는 진실은 기계적 영감이 아니고 유기적 영감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 각각에 저자의 개인적인 요소(마태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누가는 소외된 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으며, 요한은 빛 생명 사랑 진리의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가 나타나 있으나, 이러한 개인적 요소가 추호도 하나님의 영감을 제한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둘째, 성경의 영감은 그 방법에 있어서 축자적 영감(verbal inspiration)이 아니고, 개념적 영감(conceptual inspiration)이다.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어휘의 선택이나 자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지배하여 조금도 다름이나 틀림이 없도록 하였다는 것이 축자적 영감설인 데 반해, 개념적 영감설은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내용을 개념(의미)상으로만 바로 기록하도록 영감하시고 어휘의 선택이나 표현의 기술 방법 등은 저자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실제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컨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4복음서가 문자적으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이사랴 빌립보의 베드로 고백도 공관복음이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synopsis 참고). 그러나 이처럼 복음서 마다 다르게 기록되었지만, 그 내용, 즉 성경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공통되고 상치되거나 결여된 것이 없다.
셋째, 성경의 영감은 그 범위에 있어서는 부분적 영감이 아니고, 전체적 영감이다.
성경의 저자에 대한 영감은 그 내용이 역사적이거나 교리적인 것이나, 문학적인 쟝르에 있어서도 산문이거나 시이거나, 예언이거나 묵시이거나, 말의 주체가 하나님이거나 사람이거나 심지어 마귀이거나 간에 성경의 내용의 전범위에 미치는 것이다.
넷째, 성경의 영감이란 엄밀히 말하면, 원본의 저자에 대한 것이다. 성경의 내용이 영감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영감을 받은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은 파피루스 양피지 사본을 합쳐서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성서일과표 등 모두 5,500개도 넘는데 그 중의 단 둘도 완전히 동일한 것이 없으며, 바로 이 사실이 사본의 필사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감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이 성경의 영감에 대하여 언급할 때, 사본이나 역본의 영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본이나 역본의 필사자나 역자에게 영감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주의 신학자인 루이 벌코프(L.Berkhof)도 자신의 책 성경해석학(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에서 동일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위 번역서 44면).
4) 사본에 대한 바른 이해
맨 처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이나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의 원본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한편 그 없어진 원본을 보고 베껴 쓴 사본은 수천 개나 남아 있어 없어진 원본의 내용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사본의 필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보존하고자 하는 열정과 그 말씀을 널리 보급하려는 사명감으로 심혈을 기울여 원본을 필사하였으나, 인간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사본이 수백 년 동안 필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착오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한 착오의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본다.
첫째, 필사자의 비고의적인 착오로 본문이 잘못 베껴진 것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경우가 있다.
a. 필사자가 잘못 보아서 생긴 착오로서, 서로 비슷한 헬라어 글자(모양이나, 붙여쓰 기, 띄어쓰기를 잘못함으로써)를 잘못 구별하여 착오를 일으킨 경우(딤전 3:16, 벧 후 2:13, 롬 6:5 등)가 있는가 하면, 필사하는 대본의 두 행이 같은 낱말이나 음절로 끝났을 때, 필사자가 그 두 번 째 행을 빠뜨리고 베낌으로 착오를 일으키는 경우(눅 10:32, 고전 9:2 등) 등이 있다.
b. 필사자가 잘못 들음으로서 생긴 착오로써, 이것은 받아쓰기를 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사례이다(롬 5:1의 echomen<가지자>와 echomen<가진다>의 경우와 마태복음 11:16의 heterois<다른 것들>과 hetairois<동료,친구>의 경우).
c. 잘못된 기억 때문에 생긴 착오로써 동의어가 혼동되어 쓰이거나(apo와 ek), 낱말들이나 한 낱말 안의 글자의 자리가 바뀌어 필사되는 경우이다(막 1:5, 14:65).
d. 필사자가 자신의 간단한 주해를 본문 사이에 끼워 둔 것을 그 다음 필사자가 그것을 본문으로 잘못 판단해서 본문으로 베껴 씀으로써 생기는 경우이다(요5:3-4, 고후8:4 등).
둘째, 필사자들이 그 전 필사본의 어떤 부분이 문맥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잘못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첨가하는 경우이다.
(눅 11:2-4과 마 6:9-13에 나오는 주기도 등 더 자세한 설명은 메츠거의 신약의 원문, 그 전수와 오류 그리고 회복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Its Transmission,Corruption andRestoration )을 참고 바람).
이러한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달라진 성경의 사본들을 세밀히 비교 대조하여 없어진 원본의 본문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본문비평이다.
이 작업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기에 성경 연구가들은 원본의 본문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쉬운 본문 보다 어려운 본문이
2)긴 본문 보다 짧은 본문이
3)조화가 잘된 본문 보다 얼마간 불일치한 본문형태가 더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보며, 4)사본의 본문이 저자의 일반적 용어나 문학적 양식에 맞지 않거나, 전체 문맥에 어울리지 않을 때는 잘못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을 비평하고 사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두어 가지 곡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사본에 있어서의 영감의 문제는 사본 필사자에 대한 영감의 문제라는 점이다.
즉 사본 필사자에게 영감이 없었다고 해서 사본의 내용이 영감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둘째, 사본의 내용이 영감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사본이 원본을 정확하게 필사하여 보존하는 범위 안에서는 그 내용에 있어 영감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본이 영감된 것이기 때문이다.
17. 역본에 대한 바른 이해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각기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다. 원본은 없어졌지만, 그 말씀은 사본을 통하여 전승되고, 우리는 그 사본을 우리의 말로 번역을 해서 읽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번역본은 1993년 말 현재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보고에 따르면 2,062개 언어에 이른다.
그러면 성경의 번역에는 문제가 없는가? 우리는 위에서 성경의 사본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을 보았거니와 성경의 번역에는 실로 그 이상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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