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5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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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9:38 조회4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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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주님으로부터 알게 되고 주님과 한 몸을 이룬 부부라면 장래를 책임지고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며 살 것이다.
“왕이 나를”
침궁으로 끌어들이는 여인에게도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왜일까? 이것은 솔로몬 왕이 여인을 침 궁으로 이끌어 들이되 반듯이 자신이 왕의 권위를 가짐과 지위가 있음을 철저히 여인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받아들이고 신령한 세계를 체험하고 침궁의 세계를 체험하더라도 철저히 주님은 우리의 만왕의 왕이며 그분은 권위와 지위를 가지신 분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침궁의 세계 같은 신비에 세계를 체험한 후 주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주님의 위치에 높여 자신이 만왕의 왕 주님인 것처럼 거짓 그리스도로 행세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것들을 염려하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성도가 영의 세계를 체험하고 은사를 체험한다.
그럴수록 더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높이고 자신은 철저히 영적인 신부의 위치인 사람의 자리에서 있어야 함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주님이시고 사람은 아무리 많은 능력을 받아도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인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자들에게 침 궁의 체험은 계속될 것이다.
(고후12:9~10)“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에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나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5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들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하고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분명히 이들은 구원받았고 거듭난 성도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술람미 여인과는 다르다.
즉 술람미 여인같이 깊이 있게 주님을 사모하고 추구하고 주님을 향해 살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같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신앙 수준은 미지근하고 체험이 없고 통상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성도들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여자들은 주님의 사람들이긴 하나 신실하고 온전한 신부로서 갖춰야할 모든 영적 애정의 깊이를 아직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여인이 왕의 침궁으로 들어왔을 때 본문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검다는 것이다.
참으로 주님을 깊이 알기 위해 열심히 추구하는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었다면 여인은 자기의(타락한 본성을)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여인 자신의 과거가 죄인인 것을 발견한 비췸이라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가 거듭남의 체험과 영적인 눈이 열렸다면 이런 체험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타락한 속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검고 추한 죄인인 여인은 솔로몬의 휘장의 가리 움을 입어 검은 부분을 가렸음을 간증한다.
“나는 검으나 아름다우니”
이는 본성은 죄로 검으나 예수 안에서 흰 눈같이 씻음 받아 매우 아름답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계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계달의 장막(어두운 방 또는 암실을 의미함)은 그녀의 검고 추한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의 모습을 가진 여인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휘장”
세마포로 가공되어진 주님의 구속에 은혜에 세마포를 말한다. (계시록19:8) “성도들에 성화된 삶 속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의(義)의 옷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성도들의 성숙함이 예수의 속죄의 공로로 이루신 의로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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