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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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15:56 조회3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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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축복관을 한국교회에 상황화 시키는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이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옮기어져야 한다. 무교적인 축복관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자신은 부인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성경적 의미의 축복관을 떠나서 기복적인 이기주의로 축복을 이해하게 만들고 이를 위한 성령론을 이끌어 낸다. Gresham Machen은 기독교가 인간의 어떤 갈망에 기초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예수의 오심과 삶, 죽으심, 육체적 부활등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믿었다. Machen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인간의 소원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심을 입으신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었다. 성경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다.66) 우리의 세계관이 전통적인 무교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적인 것으로 바뀔때 비로소 성경적인 축복관이 한국상황 속에서 올바로 상황화 될 수 있을 것이요, 이와같은 축복에 대해 올바로 응답하는 성령론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축복은 인간의 열망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은혜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축복에 대한 이해는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하나님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사람이 사용되어지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B.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재평가
1. 한국 상황 안에서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재평가
무교적 전통 하에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통로로서의 무속인은 절대적이다. 정용섭은 지적하기를 이와 같은 무교적 전통은 한국의 기독교 예배와 조직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목회자는 축복의 시혜자로서 예배의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평신도는 축복의 수혜자로서 예배에 있어서 방관자가 된다는 것이다.67) 이런경향은 한국교회안에 축복으로 주신 성령의 온갖 은사를 하나님이 주시는 특혜로써 이기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소명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경적 관점의 축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본질적인 변환이 필요하다. 창세기 12: 2-3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되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땅의 모든 백성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고 선언하셨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 혼자만 축복을 소유하고 즐기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을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는 복의 수종자로 세운 것이었다.
축복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의 축복인 성령의 은사들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봉사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축복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축복의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로 보는 관점은 수정되어야 한다. Charles van Engen에 따르면 모든 신자가 입을 열어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사도 바울은 가르치기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연합하여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의미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만물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목회자나 평신도나 본질상 축복을 받는 자로서 동일하게 교회를 이루는 지체에 불과한 것이다. 축복은 자신을 위해 즐기기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 부터 온 성령의 은사임을 알아서 목회자나 평신도나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협력사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진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교회성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주심은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얻는 일에 수종들기 위함이요 이런 관점에서 성령의 은사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여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2. 교회성장의 궁극적 목표인 선교대사명에 대한 참여
한국교회는 선교되어진지 100여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한국교회성장에 담긴 하나님의 선교학적인 의도는 어디 있을까? 이와 같은 선교학적인 시야를 가지고 한국교회 성장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선교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호진에 따르면 세계선교는 더이상 백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요 세계 교회속에 한국교회의 역할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68)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 안에 열심있는 목회자들 뿐 아니라 잘 양육된 평신도들을 세우셨고,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인종적인 특수성을 사용하셔서 복음전도의 좋은 기회를 허락하셨다. 이와같은 모든 상황들은 교회성장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향해야 된다.
Harvie Conn은 주장하기를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언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구속사 속에서 교회의 성장은 추수꾼의 심정으로 종말론적으로 수적인 부흥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자로서 Harvie Conn의 견해는 넓은 의미에서의 교회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성장의 목적이 단지 숫자의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주어진 온갖 은사들을 활용하여 선교 대사명에 참여하고, 마침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데 이르는 것이다.69)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주신 축복을 통해 한국교회가 방탕한 자식과 같이 자신을 위해 즐기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방탕한 아들(죄인)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추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 충성되게 일하기를 기대하신다.
성경적인 축복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화해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케 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응답하게 만든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향해 축복하시는 거룩하신 뜻을 보는 일에 대해 눈을 열고 깨닫게 되는 일을 간절히 소원한다. Thomas Torrance의 말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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