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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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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4:43 조회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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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26) 하나님나라를 선포함에 따라오는 기사와 이적은 예수님의 사역에도 중요했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성장에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점에서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했다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다시 회복되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3: 오늘날 교회성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이루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성령님

 

 

A. 하나님 나라 사역의 현재성 문제에 대한 논란

 

 

오순절 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적과 기사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특별히 그들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이 사도 시대와 동일하게 오늘날 20세기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히브리서 138절에 나오는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말씀을 그 주장의 성경적인 근거로 제시한다.27) 은사주의 운동이나 신오순절주의도 결국 그들의 치유에 대한 신학적인 작은 차이점을 제하고는 기사와 이적이 오늘날에도 일어난다는 점에서 오순절 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이와 같은 은사운동이 교회와 더불어 또는 교회안에서 왕성해져 감에 따라서 치유, 방언, 귀신을 내어쫑음, 예언 등의 은사가 오늘날 교회안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들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 안에 나타나게 되었다.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성령에 의해 사도 시대에 주어졌던 특별한 은사들은 그 시대와 함께 그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오늘날 오순절주의자들 사이에 있는 이적과 기적에 대한 보고들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별히 Benjamin B. Warfield의 가르침에 따라 기사와 이적의 은사들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초대교회의 사도들에게 허락하셨던 특별한 은사라는 점에서 초대교회가 지남에 따라서 그와같은 은사들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28) 레이몬드에 따르면, "사도와 선지자와 방언하는 자의 계시적 은사들을 포함하여 성령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은사들이 오늘의 교회에도 적법하게 현존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은사운동은 "계시적 은사가 성경의 완성과 더불어 교회생활로부터 끝났다"고 따르는 장로교회들에게 커다란 문제점을 던져 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따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I/ i, vi)에 의하면 계시적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결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은사주의 운동의 가르침은 양자택일의 문제이지 공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29) 신앙고백은 ",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종류의 계시에 수단과 방법들이 중단되었다"라고 고백함으로 과거에 객관적인 말로된 계시(Objective Propositional Revelation)가 하늘로부터 주어진 일이 현재는 정지상태(Being Now Ceased)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면, 현재에는 아무 사도들도, 아무 예언자들도, 하늘로부터 직접적으로 계시들을 받아 전하는 어떤 기관들로서의 사람이라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30) John Skilton 역시 "교회가 심기워 지고 사도의 기초가 놓아지며(2:20), 신약이 기록된 연후에는 사도의 직분과 그 직분에 두드러지게 수반되었던 표적들과 은사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도시대로 부터 영감된 메세지와 함께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한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오한 법칙이 되도록 계획되었으니 성경의 완결로 말미암아 성령의 새로운 계시적 은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31)

 

John Wimber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학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배재해 버린 듯 하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사와 이적의 사역이 잘못될 것을 우려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기사와 이적을 더 이상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현대인의 세계관을 고침으로서만(Paradigm Shift)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믿게 되고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기사와 이적에 관한 사역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안에도 기사와 이적에 관한 영적인 은사가 계속해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라고 Wimber는 주장한다. 이와같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의 은사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현대 서구신학자들도, 비록 하나님과 사탄에 대해서 말하고는 있지만, 영적인 문제의 실제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서구인들을 멀리하게 하는 맹점이 있다고 Wimber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많은 경우에 이들은 하나님과 사탄을 막연한 추상적 존재, 상징, 또는 신화적인 것으로 만듦으로 하나님의 실재성과 영적인 영역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구원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심리학적인 단계가 아니라 실제이다. 그것은 악의 권세에서 실제로 놓이는 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에서 Wimber의 현대 서구신학에 대한 비판과 살아계신 하나님, 사악한 사탄의 영역과 사역에 대한 재발견은 인정될 만하다. 그러나 기사와 이적의 사역을 하나님나라의 중요한 축복의 한 모습으로 재발견하는 Wimber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기사와 이적의 사역에는 경고가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기사와 이적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성경의 중요한 축복에 대한 가르침이 왜곡될 것이요 신비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환란의 때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타날 것이며 기사와 이적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였다. (24:24) 참된 표징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죽음에서의 부활을 보여주신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관심은 기사와 이적이 갖는 의미에 놓여야지 기사와 이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Charles van Engen의 다음과 같은 경고는 매우 적절하다.

 

 

믿음은 기사와 이적(표적)에 의해서 고양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사와 이적은 그 자신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복음은 기사와 이적보다 더욱 크고 넓다. 기사와 이적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간증으로서의 기능이 있다. 교회 그 자체가 표적인 것이다.32)

 

우리의 관심이 어떤 일의 결과로서의 기사와 이적보다는 기사와 이적이 있게 된 원인에 놓일수록 기사와 이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 할 수 있다.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약속의 씨안에서 그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Charles van Engen 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언약 가운데 관계하신다. 그런데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시간과 공간을 통해 관계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언약의 형태가 역사성을 가짐은 언약의 배경으로서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상황이 고려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언약 안에서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어느 곳에서나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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