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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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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33 조회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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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성경은 창조 이래로 하나님은 한 본질이시며 이 본질 안에 삼위(三位)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1. 정통 교부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사용한 술어

 

1) 하나님의 본성은 불가해하며 영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질이 무한하시며 영적이시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일반 대중의 망상을 일축할 뿐만 아니라 세속 철학의 그 교묘한 이론을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하나님의 영적인 본성은 실로 자신에 대한 그 어떤 세속적이고 육적인 상상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메소포타미아의 Audius(372년 사망)와 같은 신인동형동성론자(神人同形同性論者)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같이 눈과 코와 입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무지한 인간들에게 하나님 당신을 알리기 위한 방법일 뿐이며, 결코 하나님이 인간과 같은 모양과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다.

 

2) 하나님 안에 삼위(三位)가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상과 좀 더 정확히 구별하시기 위하여 또 다른 특성을 보여 주시는데, 이는 하나님 자신이 홀로 한 분이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명백하게 자신이 삼위(三位)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칼빈은 사도가 성자를 가리켜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1:3)라고 한 말로 볼 때, 틀림없이 성부를 성자와 다른 어떤 실재(subsistentia)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위격 혹은 본체로 번역함)라는 말을 본질(ousia/ essentia, substantia)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밀초위에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성부의 실체substance를 재현하였다고 하는 것과 같은) 조잡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해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essence)은 단일하시며 분할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자가 하나님의 본질의 형상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다만 성자 안에 성부의 휘포스타시스를 나타내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성자 안에 있는 바로 그 휘포스타시스가 성부 안에 있다고 결론 지을 수 있으며, 또한 이 사실에서 우리는 성자에게도 휘포스타시스(the Son's hypostasis)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성자를 성부와 구별시켜 준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칼빈은 이와 같은 이론을 성령에도 같이 적응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곧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성령을 성부와 구별된 분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이 본질의 구별은 아니다. 그 이유는 본질을 다양화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사도의 증거를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께는 세 본질’(三本質)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 위’(三位 three hypostases)가 있는 것이다.

 

3)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성경 해석에 도움을 주는 말이므로 인정할 수 있는 표현이다.

칼빈에 의하면 이단자들은 라는 표현에 대하여 불평을 토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은 그 말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이것이 외래어이기 때문이라든가 또는 진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 보는 비판자도 있지만, 그 반대로 진리를 쉽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용어사용을 비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4) 교회는 거짓 교사들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와 같은 표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진리를 왜곡시키는 무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와 같은 신기한 용어도 유용하다.

, 칼빈은 아리우스(Arius)는 성경의 명백한 증거를 대항할 수 없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는 마치 그가 당연한 일을 하기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동의하는 척 하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도 다른 피조물과 같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시초(始初)를 가진다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우스에 따르면 결국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오류에 대하여 고대 교부들은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ὁμοούσιος 동일본질)라는 말로 그의 잘못된 주장을 배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명칭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 명칭들은 구별을 위해서 설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며, 이러한 종류의 속성은 아주 많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성부란 성자를 말하며 성령은 성부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을 단일신론적 형태로 변질시킴으로써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고대 교부들은 사벨리우스의 이와 같은 오류에 대항하기 위하여,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같은 말이지만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삼위가 계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확언하였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5) 신학적 용어의 한계성과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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