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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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2:29 조회7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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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지나치게 우상화시키고 극도로 샤머니즘화한 나머지 “우리”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책, 특별히 영감을 받은 사람과 특별한 지도자들이나 풀어 알 수 있는 책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영향으로 고전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성경은 물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이것을 하나의 책으로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점차 퍼졌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다른 책을 연구하는 동일한 태도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어떤 책이든지 그 책에는 중요한 사상이 있고 명백한 흐름이 있으니 성경의 경우도 역시 명백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이라는 견해가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i. 마틴 루터(Martin Luther)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독일어로 성경번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직한 마음,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로 성경을 접근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경에서 교훈을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성서를 번역하면서 개인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루터는 여러가지 주장을 했지만 성경해석에 있어서 다섯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창했다.
첫째는 문자적 해석,
둘째는 문맥의 중요성,
셋째는 역사적 상황,
넷째는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는 기독론적 해석,
다섯째는 개인의 해석의 자유를 제창한 것이다.
j. 존 칼빈(John Calvin)
그는 무엇보다 상식을 가장 중요시했다. 루터와 함께 위대한 종교개혁자였던 존 칼빈도 성서해석에 대한 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칼빈의 제창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뽑아보면
첫째로, 우화적 해석을 사탄적인 것, 마귀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왜냐하면 그는 중세기의 평신도들이 성경에서 멀어졌고 성직자들이 성경을 독점했던 이유가 바로 우화적 해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소위 우화적 해석을 마귀적이요, 사탄적으로 취급했다.
둘째로, 역사적 맥락을 중요시했다.
셋째는 “성경을 성경으로”이해하는 해석의 원리를 중시했다.
넷째는 본문의 의도 즉, 원 저자의 의도(author's intent)를 중시했으며,
다섯째로, 명료성의 원리로서 “성경의 위대성은 본문해석의 무한성이 아니라 한 가지 뜻의 명료성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수없이 풀 수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본문이 가진 명백하고 분명한 사상 때문이다.
Ⅽ. 해석 - 본문 해석과 적용의 유기적 과정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석이란 상당히 광범위한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를 크게 나누면 본문 말씀 자체의 의미 해석(interpretation)과 그 해석된 내용을 학자 자신의 현실 생활에 대비시켜 보는 적용(application), 즉 본문 해석과 적용의 2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적용은 본문 해석의 결론적 연장이기도 하고, 때로는 본문 해석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본문 해석의 기초 단계로서 요구되는 제반 관련 사실에 대한 여러 정보 수집들, 곧 기록 당시의 상황, 문맥 파악, 단어 분석들은 결국 그대로 현실 적용을 위한 객관적 근거로서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만큼 양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해당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이 말하고자 의도하신 본래 의도는 단 하나 밖에 없다.
본문 해석은 이 본래 의도를 밝혀내려는 작업이다. 반면 적용에는 그 성경 본문의 원래의 뜻이 해석자의 현실 생활에 줄 수 있는 지침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성경 본문의 상황과 현실 상황 자체의 근본적 차이점으로 인해 현실 생활에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는 본문도 있고, 반대로 여러가지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본문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정확한 적용은 본문 해석 시 요구되는 본문 자체의 상황에 대한 이해 이상의 것, 즉 해석자 자신의 시대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이해도 요구된다. 따라서 본문 해석과 적용은 서로 연장선상에 있기는 하지만 뚜렷이 구분해 볼 필요도 있다.
실제로 양자의 본질을 곡해하여 본문의 문자적 해석을 성경 전체의 문맥과 상관없이 그대로 현실 생활에 적용시킨다든가, 냉철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 없이 자신의 입장을 먼저 세워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 본문만 열거하는 행위가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본문 해석과 적용의 관계를 단적으로 규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본문 해석은 적용을 통하여 현실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정당한 적용은 성경 전체의 지지를 받는 올바른 본문 해석과 정확한 현실 인식의 결과이어야 한다.”
사실 본문 자체의 뜻은 불변하는 것이다.
그것의 현실 적용은 현실 상황 자체가 끝없이 변하듯이 끝없이 새로운 물음과 새로운 측면의 이해가 요구된다. 그리하여 적용을 위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본문의 의미 해석, 즉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인간의 궁극적,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답과 아울러 영원히 인간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 원리를 계속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살아있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본문 해석과 적용의 구분은 말씀 해석의 과정보다 섬세한 이해를 위한 것이고, 통칭해서 해석이라 하면 본문 해석과 적용을 동시에 가리킨다. 그만큼 양자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1. 성경의 자명성과 해석학의 필요성
1) 성경의 자명성과 해석의 가능성
성경은 근본적으로 성경 시대의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평이 한 일상 언어로 기록된 것이다. 또 성경 기록이 각각 다른 문학 양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성경 독자는 충분히 그 양식의 유형과 관습을 이해할 수 있다. 괴이하고 작위스러운 암호문으로 되어 있는 성경 구절은 없다.
또한 성경의 모든 문장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누구라도 성령의 조명하심과 열린 심정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 본문을 해석할 수 있다. 또 성경의 기본 목적, 즉 인간의 구원을 위한 계시라는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한 최종 단계로서 계시의 수신자인 독자가 해석하고 묵상하여 말씀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문 신학자만이 아닌 성도 만인의 특권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특히 이것은 성경을 고대 교부나 사도들의 저서, 고대 선조, 교황의 칙령 등의 여러 권위 중에서 상대적으로 으뜸인 소위 신앙의 제일 기준으로 보는 카톨릭과 달리, 오직 성령만을 절대 유일의 신앙 기준으로 보는 정통 개신교에 있어서 그야말로 결정적 신념이다.
2) 성경 해석의 필요성
한편 일반적인 성경의 자명성은 고도의 엄정한 해석학 연구의 필요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생활의 기본 원리와 교훈은 일반적 성경 해석을 통하여 충분히 받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성경 전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현재까지 그 어떤 학자도 완전히 권위 있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고전15:29, 벧전3:19) 심지어 성경 자체도 성경 안에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될 구절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신17:19, 대하17:9, 사2:3, 히6:1-3, 벧후3:16)
또한 해석된 성경 본문의 교훈을 현실 생활에 적용시키는 데에는 건전한 해석학적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족장시대의 일부다처제, 몇몇 왕들의 왕권 신수, 특별한 경우 하나님의 저주로 내려지는 질병, 농업 경제 체제 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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