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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7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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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38 조회6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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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행이 의롭다함을 위하여 유효하다고 하는 스콜라 사상을 논박함

 

1) 믿음에 의한 의와 행위에 의한 의

많은 사람들이 의는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보지만, 칼빈에 의하면 이들 양자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세우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넘어지게 된다고 본다.

칼빈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3:9),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3),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이로니라”(3:27)는 바울 사도의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믿음은 우리의 자랑을 없애버린다. 행위의 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안은 자랑할 이유가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행위에 의한 의는 결코 믿음에 의한 의와 관련시킬 수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는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믿음과 행위의 두 근원에서 나와 합쳐지는 의 - 이런 의를 생각해내는 사람들의 몽상과 작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 중생한 사람의 행위도 칭의를 얻지 못한다.

칼빈은 궤변자들이 행위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선물이며 중생의 결실이라면, 사람은 이런 행위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함에 대하여, 율법의 의는 율법이 명하는 것을 준행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믿음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는 것이다(10:5,9).

그리스도의 은혜인 성화와 의는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행위로의 중생은 결코 의가 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칼빈은 아브라함의 생활은 영적이었고 거의 천사와 같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기에 충분한 행위의 공로가 그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 것이라 성격은 증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3) 은혜와 선행에 대한 로마 교회의 교리

스콜라철학자들, 교황주의자들은 하나님에게서 공로에 대한 보상을 기다리는 양심의 확신이 믿음이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의를 전가해주시는 일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성화를 추구하는 것을 도와주시는 성령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은혜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우리의 어떠한 공로도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의 경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은혜를 성화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펠라기우스주의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칼빈에 따르면 펠라기우스와 극한 대립을 하였던 어거스틴도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은혜를 성화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가르침은 매우 훌륭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만은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4)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데 대한 성경의 판단.

성경은 믿음에 의한 의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행위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완전성만을 보라고 한다.

칼빈은 그래서 참으로 칭의의 순서는,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결하고 값없이 베푸시는 인애하심으로써 죄인을 포용하시며, 그 다음에 사람이 하나님의 인애를 느끼게 하셔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에서 구원 전체의 근거를 얻도록 하신다고 말한다.

 

5) 믿음의 의와 율법의 의에 대한 바울의 견해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여,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10:5) 말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10:6)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10:9)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바울의 이 말 속에는 율법은 행위의 의를 돌리고, 복음은 행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거저 의를 준다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의 약속은 값없이 주는 것, 하나님의 자비에만 의존하는 것이지만, 율법의 약속은 행위를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이것이 그 차이점인데, 보통사람뿐 아니라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도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

 

6) 칭의는 행위에 대한 보수가 아니고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3:11-12; 2:4). 바울은 율법과 믿음은 다르다고 말한다. 믿음의 의를 얻기 위하여 별도의 행위의 공로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과 율법이 다른 점은 의를 행위에 연결시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만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의 도움이나 의를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빈손으로 의를 받게 되는 것이다.

 

7) “믿음만으로궤변가들은 다양한 트집을 잡지만, 칼빈은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3:28)는 것 이외에 다른 그 무엇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사람들은 ”(only)이란 말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이 말을 첨가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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