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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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37 조회5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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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온 우주에 편재하시어,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만물을 유지하시고 그것들을 성장케 하시며 그것들을 소생시킨다. 또한 그분께서는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기 때문에 피조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그것들에게 본질과 생명과 운동을 불어넣어 주심에 있어서, 확실히 그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칼빈은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성령을 빌려온 능력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거듭나게 하시는 창시자이시며, 중생뿐만 아니라 영생의 창시자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본다.
요컨대 성령에게도 성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신성에 속하는 기능들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즉,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롬 11:34), 성령께서는 지혜와 말의 재능을 주신다(고전 12:10). 그러므로 성령이 신성이 없고는 이러한 일은 결코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히 신성이 증명된 것이다.
특히 칼빈은 우리의 칭의(Justification 稱義)는 성령의 사역이라 본다. 능력, 성화(고전 6:11 참조), 진리, 은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체의 선이 다 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은사의 근원은 오직 한 분 성령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2:11).
바울사도가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 12:4)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성령은 모든 은사의 시초요 원천일 뿐만 아니라 그 창시자임을 잘 표현한 구절일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안에 실재적(實在的)으로 머무르신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2) 성령의 신격에 대한 명백한 증거의 대하여
바울사도의 말처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전(殿)이라고 할 때(고전 3:16-17, 6:19; 고후 6:16) 성령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탁월한 의미에서 모든 예언의 저자이신 성령이야 말로 참되신 여호와라 말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완고함을 인하여 노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이사야는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사 63:10)라는 기록에서도 성령의 신성을 잘 볼 수 있다.
특히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한다”(마 12:32; 막 3:29; 눅 12:10)고 공관복음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는 성령의 신적 권위를 공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3.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의 대하여
1) 하나님의 하나 되심의 대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하나 되심에 대하여, 바울이 하나님(주), 믿음, 세례 이 세 가지를 그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추리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다른 증거 없이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주도 하나이며, 또한 세례가 하나이기 때문에 믿음이 또한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서 잘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라고 하셨는데, 이 명령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신앙으로 믿어야 하는 말씀이며,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증거이다.
특히 신앙은 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하나님과 연합하고 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세례는 신앙의 성례이기 때문에 신앙의 종류가 여럿이라면 신 또한 여럿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하나 되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은사는 여러 가지라도 성령은 같은 한 성령이다(고전 12:11).
2) 삼위(三位)의 대하여
성경은 성부와 말씀,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확인했는데, 그렇다면 성부와 성자 및 성령 간에는 어떠한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칼빈은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Nazianzus)가 “나는 즉시 삼위의 광채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단일성을 상상할 수 없다. 또한 곧바로 단일성을 상기하지 않고는 삼위를 분별할 수 없다”
("Ou ftano to ei noesai, kai tois trisi perilampomai; ou ftavo ta tria dielein kai eis to hen anaferomai" : "I cannot think of the unity without being irradiated by the Trinity: I cannot distinguish between the Trinity without being carried up to the unity." 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삼위(三位)가 곧 삼일성(三一性)으로 상상해서는 안 되지만 성부와 성자 및 성령이라는 말은 분리(division 分離 혹은 分割)는 아닐지라도 분명 위격(位格) 상에서는 실제적인 구별(distinction 區別)은 의미한다고 본다.
즉,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면 성부와 더불어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없을 것이며(슥 13:7), 성부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데서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고는 성부는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며(요 1:3; 히 11:3),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나(요 15:26) 성부가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데서(요 14:16) 성령은 또한 성부와 구별된다.
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점
삼위는 분리는 아니지만 분명 구별은 된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 자칫하면 삼 신론(三神論)이 될 수 있는데 칼빈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칼빈은 성경에 따를 때 “성부는 일의 시초(始初)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counsel)이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으며, 성령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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