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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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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3:43 조회3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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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저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께서 떠나 버리시면 누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가르쳐 주며 또 인도해 줄 것인가? 우리들이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칠 때에 누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인가? 어떻게 우리들은 이 무서운 세상을 능히 대적할 수 있을까?

제자들이 이와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을 때에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으로 저들의 마음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6).

보혜사는 말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이다) 다음과 같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일에 있어서나 특히 형사상의 소송 사건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돕게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고대 법정에는 변호인으로 자기의 친구 중에 가장 유력한 사람을 하나 또는 그 이상 세우는 것이 보통 관습처럼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런 변호인을 헬라어로는"파라클레테스"(Paracletes)" 또 라틴어로는 "애드버커터스 (Advocatus)"라고 불렀다. 이들이 친구를 위하여 변호한 것은 보수를 받기위해 서가 아니라 친구를 위하는 사랑에서였다.

곧 공정하고 바른 재판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변호를 하기 위하여 친히 법정에 출두하여 변호했던 것이다.

저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에 관해서 친구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를 대신하여 변호도 하고 행동도 하여 마치 친구의 소송 사건을 자기의 소송 사건처럼 생각하고 어려운 재판을 하는데 있어서 친구의 펀이 되어 주었다.

예수께서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그는 그의 제자들과 이와 같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에 저들은 자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가 없는 동안에 저들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고 가르쳐 줄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저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예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신 까닭은자기는 제자들에게 볼 수 있는 존재로 있었지만 이 보혜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란 말은 성령과 예수를 구별지어 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을 예수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계승자인 동시에 또한 그의 임재하심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저들 속에 그리스도를 거하게 사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저들은 사도 바울과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그리스도의 본질이요, 그리스도의 감정이요, 그리스도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성령께서는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하며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모범을 따르게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없다면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역사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제거해 버리는 일은 마치 사진관에서 원판에 찍으려는 사진의 주인공을 제거해 버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의 대변자와 조력자로서의 존재를 상실하고 만다는 뜻이 아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우리들을 위하여 대언자의 직책을 수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12:1). 하늘나라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를 옹호하고 계시다.

그리고 동시에 지상에서 역사하고 계신 성령께서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를 통하여 이 땅위에 있는 교회의 원수들을 잠잠케 하신다."

예수께서 하늘나라에 계신 대언자라면 성령은 지상에 계시는 대언자라고 할 수 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수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 예수께서 육신을 갖고 있을 때에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으셨다.

그러나 승천하신 이후에 그는 성령을 통하여 어느 곳에든지 계신다. 이 땅위에 계실 동안에 그는 사람들의 밖에 계셨다.

그러나 승천하신 이후 그는 인간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 계시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지상에서 남아 있다면 그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유일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신 성령을 보내 주셨음으로 우리들은 성령을 힘입어 살아가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볼 수 있게 유형적 존재로 우리들과 함께 계시다면 그와 우리와의 관계는 대리석을 조각하는 예술가와 그의 모뎀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지상에 남아 있다면 그는 다만 과학적 연구의 연장된 관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며 우리들의 외부에 있을 것이다.

즉 외형의 목소리이며 외형상의인생이며 외형상의 모형에 불과하기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는 혼 중의 혼이요, 영중의 영이요. 우리들의 이성의 진리요 우리들의 마음의 사랑이요 우리들의 의지의 욕망으로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성자의 사업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떠나시고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무슨 유익함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렇다 성령께선 전해 주시는 것은 지상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천상의 그리스도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원한 능력을 다시 부여받게 되었고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다시 옷 입게 되었다. 고돈 (A.J.Gordon)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은 하고 있다.

"부자 친척이 돌아감으로써 상속자가 된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우리들은 매우 가난하다. 그런데 나는 상속자가 되었다.

만일너희들이 내가 상속 받으려 떠나는 것을 기꺼이 받아 드리기만 하면 나는 바다건너 멀리 가서 상속을 받으리라. 내가 여기 머물러 있음으로 너희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의 천배도 더 되는 재물을 너희들에게 보내주리라."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은 그의 가난한 시대와 (고후8:9) 비천한 때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은혜의 풍족함을 얻게 되었다 (1:7).

보좌에 앉게 됨으로서 그는 영광의 풍성을 누리게 되었다. (3:16).

승천하신 후에 그는 성령을 보내어 그가 상속받은 재물을 전해주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그는 주실 것을 더 많이 갖게 되었고 교회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되었다(16:1214:12). "생명의 물줄기의 근원이 높은데 있으면 있을수록 그 생명의 물줄기는 더욱 힘차게 흐르게 될 것이다. "보혜사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완성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전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완성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는 완전히 전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16:1213 속에 예수님의 적절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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