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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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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15:53 조회4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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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인류의 관계와 더불어서 그 언약의 형태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유의해야 한다. 윔버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서 일하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은사들은 성령님의 권능을 입히운 증거이며, 이 성령님의 능력주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준비된다. 이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고전12:7) 하나님으로부터 부음 받은 것이니 신자가 은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다."33)

 

이와 같은 윔버의 은사에 관한 견해는 흔히 은사를 소유(Possession)개념으로 이해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듯한 착각을 통해 교만에 빠지기 쉬운 함정을 벗어나게 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 세움을 받게 된다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빈야드교회가 출판한 책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병고치는 은사가 행하여졌던 862건 중에서 32%(279)는 많은 고침을 받았고, 26%(222)는 어느정도 고침을 받았고 나머지 44%(366)은 전혀 고침을 받지 못하였다"는 기록은 은사가 소유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주어짐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겸손의 표는 될지 모르지만,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병고치는 은사가 행하여 질 때 완전히 병에서 놓임받았음을 증거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조대준의 지적과같이 빈야드교회는 자신들이 내세운 치료율을 돌아보면서 현대시대가 예수님과 사도시대와 동일한 기사와 이적의 시대라는 주장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34)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오늘도 이루시는 성령의 사역을 믿되, 오늘날의 치유나 축귀 또는 다른 이적과 기사들이 사도시대와 동일하다고 믿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사를 따라서 각각 다른 때에 다른 목적을 위한 은사들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도 사도의 권위와 은사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데이비드 왓슨의 말처럼, 오늘날도 사도시대에 존재했을 은사들이 동일하게 존재해야 된다고 이해해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양 다른 은사를 각양 다른 목적을 위해 주시고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은 이천년전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천년전에 종들을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사용하시는가 하는 점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천년전과 오늘의 비교가 아니라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3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사역을 위해서 오늘날도 성령의 은사들을 축복으로 당신의 종들을 통해 나타내신다. 이러한 은사들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케 하여 교회를 성장케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기사와 이적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기사와 이적의 현상이 오늘날 계속되는가 아니면 중단되었는가에 우리의 관심이 있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사와 이적이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메세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도 성령께서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이루신다는 견해가 구약과 신약, 사도시대와 오늘의 시대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않된다. Peter Im이 올바로 지적한 것과 같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는 항상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서 언약적인 관계라는 계속성(Continuity)이 있는데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을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과거보다 좀더 풍성히 그리고 깊고 의미있게 발전적으로 계시하신다.36) 하나님은 구속적인 은혜를 점진적으로 보이심으로 축복하시는데 특별한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유롭게 온갖 다양한 은사들을 허락하신다. 또한 정경의 완결(The Close of the Canon)이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도 않된다. (물론 계시적인 은사가 오늘날도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시대에 교회의 초석을 놓는 일을 위해 사도들을 특별하게 사용하셨다는 점에서 사도시대에만 주어진 독특한 은사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오늘날도 사도시대와 동일한 은사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구속을 이루어 가시는 당신의 계획을 따라 이 시대에 필요한 은사들을 성경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나누어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교회를 축복하시고 성장시키신다.

 

 

B.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의 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축복인 하나님의 은사들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교회의 질적이고 양적인 성장을 위해서 영적은사의 발견과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사실상 대부분의 은사에 관한 연구들이 극단적이거나 변증적인 성격을 띨 뿐 실제적인 교회의 생활에 적용시킬 만한 은사에 관한 연구가 적었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37) 특별히 선교와 교회성장과 연결 지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시급하다. Kenneth Kinghorn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등한히 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영적인 은사들을 통해서 교회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대한 교회의 무지함, 둘째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의식 못함, 셋째로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부르시고 사역하도록 하심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자 함 등이다. Kinghorn"이와같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의 영적성장을 억압시키고 교회의 사역에 장애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경고 하였다.38)

 

Kenneth Birch는 주장하기를 은사(Charismata)에 대한 관심은 이제 교회의 변방에 머물던 몇몇 광신자들의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류(Mainstream Christian Churches)안에서도 연구되어지고 또 받아들여지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39) 그는 교회사를 크게 세 가지 영향권아래 분류하면서, 첫 번은 로마 카톨릭의 시대였고, 둘째는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소위 오순절주의라고 불리는 제3의 세력하에 교회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40) 현대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올바로 행사되어지기만 하면 교회의 영적인 삶을 강화시키며 통일성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고 특별히 평신도 사역(the Ministry of the Laity)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서 성령의 은사는 급격한 관심이 되고 있다. Paul R. Orjala에 따르면, "모든 기독교인은 그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안에서 감당해야 할 적어도 하나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때때로 성령께서는 어떤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여러개 묶어서 주시는데 그 중에 어떤 것은 더욱 중요하고 나머지는 보조적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41)

 

1. 성령의 선물과 성령의 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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