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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5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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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2 조회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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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시사한다. , 우리가 육의 짐을 지고 있는 동안은 믿음이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불완전하므로 더욱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적은 믿음이라도 그 순수한 맛을 확실히 맛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노출된 얼굴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결과로 변화하여 주의 형상과 같이 된다고 바울은 언급한다(고후 3:18).

 

6)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방패이다.

신자의 마음이 아무리 이상하게 번뇌와 고통을 당할지라도 결국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확신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그를 시험하며 괴롭히는 모든 싸움은 도리어 이 확신을 굳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칼빈은 믿음은 세상의 다양한 공격을 견디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며 방위 태세를 강화한다면서, 믿음은 우리의 방패로(6:16), 이 방패를 들고 나아가면 모든 전투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것이다.

요한 사도도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성도의 믿음이 작아 아직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속마음이 갈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진보를 이루게 될 때는 이 믿음이 방패가 되어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진보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7) 옳은 두려움

성경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도가 영화롭게 될 때까지 견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가 갖는 구원의 확신은 나 자신의 형편을 초월한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울사도는 왜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 라는 말을 하였을까?

칼빈은 성도들이 이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첫째,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 예를 보고 신자들이 그것을 자기들에 대한 경고로 생각하며,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도록 특히 주의할 때에, 신자들은 이런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을 가진다.”

 

둘째, “자신의 가련한 상태를 반성하여 전적으로 주를 의지할 줄 알게 되며, 주를 떠난 자신들은 어떤 바람보다도 불안정하며 덧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는 때에 신자들은 두렵고 떨림을 경험한다.” 따라서 칼빈에 따르면, 이 말은 믿음의 확실성을 줄이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나아가 칼빈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11:20)라는 바울의 충고를 여기에 덧붙인다. 그런데 칼빈에 따르면, 이 충고는 우리가 자신의 확고함에 자신이 없는 듯이 흔들리라고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만을 제거하며 우리가 자신의 힘을 경솔하게 과신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뿐이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따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성도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선줄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고한 명령인 말씀을 이탈하지 않도록 부단히 경계해야 한다.

8) “두려움과 떨림

칼빈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가르칠 때에, “사도는 우리가 주의 권능을 높이며 자기를 아주 낮추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라고 요구할 따름이며,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마음에 확신을 얻게 되려면, 우리 자신을 믿지 말 것과 자신의 파멸 상태를 인식하고 불안을 느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두려움을 느낄 때 혼미한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회복하며 낙심했던 마음이 그의 안에서 되살아나며 절망에 빠졌던 마음이 그를 믿음으로써 소생한다.

그러므로 신자가 무서워하는 동시에 확고한 위안을 얻는 것은 여전히 무방하다. 눈은 자기의 허무성에 돌렸다가 하나님의 신실 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 가리라”(3:5)라고 한 것이다.

두려움과 떨림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경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칼빈은 경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낳을 뿐만 아니라 낙심한 사람에게 은혜가 임한 때에 그 은혜의 감미로움과 즐거움은 그 사람의 마음을 경외와 동시에 찬탄(讚嘆)으로 가득하게 채워,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권능에 겸손히 복종하게 된다.”

 

9) 믿음의 확실성이 확고부동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스콜라철학에 기초한 교황제 신봉자들은 불신앙이 섞인 확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내용인즉, 그들은 양심을 소망과 공포 사이에 놓고 가끔 번갈아가면서 이쪽저쪽으로 왕래하게 만든다. 그들이 말하는 소망과 공포의 관계는 소망이 높아지면 공포는 억압되고 공포가 다시 올라가면 소망은 다시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에 따르면, 이런 말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계신 것같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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