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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10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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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6:17 조회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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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비교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전자는 후자, , 그리스도의 모형이지만, 대 제사장은 속죄의 큰 날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죄를 위해서 희생을 바쳤다.

제사장은 그들을 위해서 다만 그들을 위해서만 화해를 시키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들을 위해서만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백성에 대한 긍휼은 알미니안의 조건적 선택과 무제한적 속죄와의 교리에 있어서 보다도,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적 속죄와의 교리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결론에 있어서 칼빈주의 자는 일반 인류가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중대한 은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칼빈주의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아담의 죄 때문에, 전 인류에게 가해져야 할 형벌을 받지 않는 것, 또 그리스도의 속죄가 복음 선전의 근저가 되며, 많은 도덕적 감화를 세상에 가져오고, 많은 악한 감화를 억제하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태양을 악한 자에게도, 선한 자에게도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내려주신다.

많은 현세적 축복이 구원을 보증하는 데는 역부족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이와 같이 보증하는 것이다. 특정적인 구원, 혹은 제한적 속죄를 주장하는 자는, 인류 일반 드디어는 멸망될 자조차 그리스도의 이 죽음에서, 무엇인가 은혜 혹은, 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들이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특수성격에 있어서 축복을 전 인류에게 가져왔다는 것, , 그리스도가 용서와 화해를 전 인류에게 가져왔다는 것이다.

많은 축복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인류에게 넓게 흘러온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시려고 할 때에 예견되는 것이다. 라고 컨닝 함이 말한 그대로이다.

그런고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알미니안의 모든 주장을 절대적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선택된 자에게 있어서, ,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효과적이라는 특별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에게 생기는 효과는 이 큰 목적-선택된 자의 구원-의 부수적인 것이 불과한 것이다.

 

d. 성도의 궁극적 구원

4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지키심의 은혜의 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실제로 부르시고 또한 성령으로써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 그 상태에 있을 것이며 또한 영원히 구원 받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 무조건적으로 영원한 생명에 택하시고 성령의 구속의 은혜를 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구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불가피적인 결론이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현재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신자들 보다 행복하긴 하지만 안전성에 있어서는 어느 거나 한가지이다.

이와 같은 선물의 수여는 그것을 받는 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계시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가 말하는 것 같이 참 그리스도 신자가 된 자에게도 멸망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들이 아직도 구원의 상태 안에 있을 동안에 이 세상에서 제거하지 않는 다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하나님이 그들의 장래의 배교를 예견하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구속되어 하늘로 옮겨간 자는 거룩한 가운데 보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만일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성도들을 그들의 자유행동을 방해하는 일 없이 보호하지 않으시겠는가? 중생된 그리스도 신자가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서 그 아들이 되는 관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지상의 아버지의 대해서 그 아들이 아들 되는 입장을 잃는 일이 없는 것과 한가지이다.

참 기독교 신자도 타락하고 멸망할 수가 있다는 사상은 중생된 영혼에 주어지고 영적 생명의 원리에 관한 개념을 잘못이해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바울은 믿는 자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다고 가르치고, 그러므로 신자는 율법아래 있지 않는 고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정죄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고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11:6)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4:15) 이라 가르치고 만일 행위에 의해서 가르침의 최소 부분이라도 할려구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그는 율법의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5:3) 말하고 있다.

, 그들은 자기의 힘으로 완전하게 순종하고 그것으로 자기의 구원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무한, 신비한 책은 그들이 절대로 멸망되지 않기 위한 보증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부동이며, 하나님의 실재와 같이 불변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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